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1.12 조회수 | 5,833

‘돌아온 하드코어’ 소설가 백민석 “위로보단 충격이 효과적이지 않나요?”

 

‘작가들의 작가’, ‘우리 시대 압도적 하드코어 소설가’로 불리는 백민석이 새 장편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한겨레출판/ 2017년)를 썼다. 1995년 등단 이래 한국 문학의 뉴웨이브를 이끌며 주목받았으나, 2003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던 백민석. 10년 만에 극적으로 돌아온 그는 마치 그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1년 간 발표한 책만 해도 7권이나 된다.

 

이번에 신작과 함께 재출간한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한겨레출판/ 2017년)은 평범한 일상 속에 끔찍한 폭력과 판타지를 배치함으로써 섬뜩한 공포를 안겨주었던 작품. 2000년 발표 당시만 해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낯설었던 ‘백민석 표’ 엽기와 공포가 17년이 흐른 지금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를 모은다.

 

“장르도, 스타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매번 바꾸어 가면서 쓸 것이다!” 이런 선언을 증명하듯 백민석의 새 장편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과 실험으로 눈길을 끈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교양’과 ‘광기’를 대변하는 두 인물이 일기장의 앞면과 뒷면에 서로 다른 일기를 쓰면서 ‘맞짱’을 뜨는 형식이 신선하다.

 

두 개의 자아가 각각 앞면과 뒷면에 동시에 일기를 쓰는 기발한 형식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일까? 절필 후 돌아와 4년 동안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백민석 작가를 만났다.

 

 

‘중심’은 편의적이고 허구적인 인간의 집착

 

Q 교양과 광기라는 두 개의 자아가 앞뒷면에 일기를 쓴다는 구성이 독특한 소설입니다. 모티브를 얻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소설가가 직업이니까 하루 종일 소설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24시간, 잠잘 때도요. 그러다 보면 가끔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기 형식으로 소설을 써본 것은 처음입니다.

 

Q 2015년 석 달 간 쿠바에 체류할 때 집필하기 시작한 소설인데, 도중에 중단했다가 2년 만에 마무리하셨다고요. 오래 쉬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쓰다가 갑자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까먹었어요. 이것저것 여러 가지 생각을 좀 해보다가 다시 시작한 거예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혀 끝에 남자>는 거의 10년을 잊고 있다가 썼어요.

 

Q 백민석 작가 특유의 광기가 휘몰아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그 정도가 약했어요.

 

원래 광기가 무서워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웃기는 분위기로 쓰려다 보니까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Q 애초에 웃긴 걸 쓰고 싶으셨나요?

 

별로 안 웃겼나요? 좀 더 웃겼어야 되나... 어쩌면 일 년 동안 길을 잃었던 이유도 어느 한쪽으로 확 기울지 못하고 갈팡질팡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Q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고 보세요?

 

그렇진 않아요. 이런 광기도 있는 거죠 뭐.

 

Q 교양과 광기의 일기를 동전의 양면처럼 일기장 앞뒷면에 배치한 것은 교양과 광기를 나누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장치였나요?

 

그렇죠. 한 사람 안에 다 들어 있는 거잖아요. 그걸 나누다 보면 사람들이 대체로 광기 쪽을 억압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많이 생기잖아요. 가령 우울증이라든지.

 

Q 나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어느 한 쪽을 ‘중심’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결국은 ‘중심’의 문제를 다루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중심은 원래는 없는 거죠. 인간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들어낸 허구일 뿐. 그렇게 해석된 중심이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좌지우지하는가에 대한 제 생각을 써본 거예요. 어느 한 쪽을 중심으로 놓으면 다른 한쪽은 내키는 대로 뱉어내고 부정할 수 있잖아요.

 

Q 여행자의 필수품인 카메라나 쿠바 혁명을 상징하는 총을 통해 남자의 ‘중심’, 즉 남근 중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남근 중심주의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죠. 카메라도 그 하나예요.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쿠바에 있다 보니 말도 안 통하는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자꾸 다가와서 렌즈 길이를 재보고 성능을 비교해보더라고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도 거의 남자들이에요. 사진을 ‘찍는다’, ‘박는다’는 말도 남근 중심적인 문화와 관련이 있고요. 카메라 외에도 남자들이 집착하는 게 총이잖아요. 총도 뾰족한 형태이고, 쏘는 행위도 남자들의 발산하고 뿜어내는 본능과 통하죠. 튀어나온 것들, 예를 들어 성당의 첨탑이나 거대한 빌딩인 마천루도 다 이런 것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빌딩들이 보여주는 게 뭐겠어요?

 

Q 복귀 후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이런 남근주의에 대한 비판인데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우리나라가 굉장히 남근 중심적인 사회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문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마 문단 안에 계속 있었더라면 잘못된 걸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다른 식으로 보는 눈을 갖게 된 거죠.

 

 

글 쓰고 책 내는 것은 특별한 일 아닌 그저 일상일 뿐

 

Q 2013년 절필에서 돌아온 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최근 1년간 무려 7권의 책을 내셨다고요.

 

재출간한 책도 있고 신간도 있고 그런데, 1년 간 엄청 썼다기보다는 시기적으로 늦어진 것들이 있어서 한꺼번에 몰려나온 부분도 있어요. 그리고 일종의 물량 공세라고나 할까요? 하나만 갖고는 못 먹고 사니까요.

 

Q 최근에서야 등단 후 처음으로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같은 에세이들도 내셨죠.

 

어렸을 때는 소설가가 그런 거 쓰면 큰일 나는 줄 알았죠.

 

Q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바뀐 건가요?

 

소설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에세이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에세이는 소설보다 재미는 없어요. 다만 새로운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이런 것도 쓸 수 있네? 뭐 이런 걸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어요.

 

Q 복귀 후 지난 4년을 돌아본다면요?

 

바빠서 좋았어요. 소설을 안 쓰고 기술직으로 일하며 살 때는 몸이 바빴는데, 지금은 정신적으로 바빠요. 이것저것 건드리느라고 정신없이 살아요. 그런데 그게 좋아요.

 

Q 소설 안 쓰고 10년 동안 어떻게 참으셨나요?

 

그냥 참아지던데요. 단순히 직업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직업을 하느냐 저 직업을 하느냐의 차이지, 사람 사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봐요.

 

Q 소설을 그만 두셨을 때를 돌아보면 무거운 짐을 벗은 것처럼 좋았나요?

 

좋았어요. 그때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었는데 소설을 그만두고 나서 30킬로그램이나 빠졌어요. 그런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니 몸무게가 또 늘었어요. 그런데 지금 상태가 별로 나쁘지는 않아요. 얼마 전 발을 다쳐 운동을 못해서 그렇지, 나으면 예전처럼 방치하진 않을 거예요.

 

Q 오래 쉬다 돌아와서 그런지 지금은 굉장히 왕성하게 활동하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데뷔했을 때도 안 기뻤다고 했잖아요? 계속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어요.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그 상태. 밥 먹는 것 같은 그 상태. 하는 일이니까 해야지. 원고 청탁 들어왔으니까 써야지 그런 거예요.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줄 모르면 20년이나 글을 쓸 수 없을 걸요?

 

Q 그렇다면 글을 쓰지 않았던 10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때 뭔가 놓쳤던 거죠. 그런데 안 알려져서 그렇지 한창 잘 쓰다가도 몇 년씩 글을 안 쓰는 사람들 많지 않나요? 아무 말 안 하고 쉬면 되는데, 저는 공식적으로 절필을 선언해 버려서 알려진 거죠. 사람들이 자꾸 절필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그게 왜 궁금하죠? 자신들도 글이 안 써지면 절필할 걸요?

 

Q 10년 동안 아예 글을 안 쓰신 건가요?

 

네. 10년 동안 문단과 연락을 끊고 하나도 안 썼어요. 왜냐하면 돌아올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내가사는 방식도 하드코어 같아요. 아마 한 출판사 대표가 제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연락하지 않았다면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Q 그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소설 같습니다.

 

뭐 특별한 거 하나도 없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Q 작가로 한창 활동할 시기인 30대 초반에 10년 간이나 글을 못 썼는데 후회는 없나요?

 

그런 생각을 하면 자꾸 우울해질까봐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기도 그런 게, 그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잘 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 읽어 놓은 책들을 밑천 삼아 지금 글 쓰고 강의하고 서평 쓰면서 먹고 사니까. 작가 활동 하면서 책을 많이 읽기는 힘들어요. 안 쉬고 작가 활동 했으면 지금쯤 밑천이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에 인용된 책들도 반은 그때 읽은 것들이에요.

 

 

“나는 20년 전에도 지금도 ‘너무 나갔다’는 얘기 듣는 작가"

 

Q 절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다면요?

 

지금이 조금 안정됐어요. 제가 보니까 이전보다는 안정된 글을 쓰더라고요. 연륜? 나이값? 이런 거겠죠.

 

Q 이번 책만 봐도 그렇고, 좀 착해진 건가요?

 

이 책은 착한 캐릭터도 있고 그런데, 1년 전에 나온 <공포의 세기>만 해도 안 그래요. 그건 진짜 하드코어적이에요.

 

Q 이렇게 하드코어적 태도를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위로보다는 충격’을 지향하기 때문일까요?

 

글쎄요? 성격이 아드레날린이 많은가? 성격 차이죠 뭐. 제 작품이 다 하드코어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나 <혀 끝의 남자>는 평범한 내용이에요. 위로와 충격을 딱 두 가지로 칼로 베듯이 나눌 수 있는 건 물론 아니겠죠. 위로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걸로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걸요? 위로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충격을 주면 그게 사람을 움직이게 하니까 좀 더 효과적이라고 봐요.

 

Q 지금 우리 사회는 위로보다 충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 거 다 필요없고, 그냥 책이나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책 몇 권 내다보니 자존심이 다 없어졌어요.(웃음)

 

Q 책이 많이 팔리기 바라면 충격보다 위로 쪽을 선택하시는 건 어떤지요?

 

성격이 가능하지가 않아요. 누구를 위로해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위로는 다른 사람들한테 맡겨야죠 뭐.

 

Q <목화밭 엽기전>이 재출간됐는데, 지금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 같은가요?

 

아마 지금 젊은 층도 제 책을 소화 못할 걸요? 제 책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독자들이 항상 소화를 못했어요. 20년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너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요.

 

Q 조금만 후퇴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럼 제가 죽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갖고 있는 전부인데, 제 스스로 그걸 버리면 뭐가 남겠어요?

 

Q 마지막으로, 이 책이 독자들한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재밌게? 신선하게? 그렇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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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백민석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소설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문체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써나가며 1990년대를 풍미했던 작가는 2003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가, 10년간의 긴 침묵을 끝내고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목화밭 엽기전』『러셔』『죽은 올빼미 농장』『공포의 세기』『교양과 광기의 일기』와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수림』,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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