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1.10 조회수 | 7,671

‘수도서원 50주년’ 이해인 수녀 “우리의 가난은 약간의 성취감마저 포기하는 것”

 

2018년이 밝았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되는 시기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따져보면 그 목록이 끝도 없이 늘어나겠지만, 행복을 만드는 본질적 요소는 곁의 누군가에게서 오는 아주 약간의 온기다. 그 따스함으로 사람은 살고, 그것이 부족하면 아무리 풍족한 환경에서도 죽기도 한다. 이해인 수녀가 6년 만에 발표한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샘터/ 2017년)에 실린 글들은 사랑의 온기를 담뿍 담고 있다. 무엇보다 2018년 이해인 수녀의 수도서원 50주년을 앞두고 출간 된 책이며, 2008년 여름에 시작한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낸 후 나온 책이라 더욱 반가운 맘이 크다.

 

“네잎 클로버를 하나 붙일게요. 축복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개나무 잎사귀도 넣고요. 맛있는 케잌도 하나 넣을까요? 여기에 숟가락도 놓고요.”

 

2017년을 단 며칠 남겨둔 어느 날, 이해인 수녀를 서울 한남동 북파크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그녀는 색연필과 스티커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싸인을 해주었다. 암을 극복한 70대라는 신체 조건이 무색할 만큼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는 유쾌한 기운이 흘렀다. 삶을 타박하고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하고 경탄하는 태도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그녀만의 삶의 철학이다.

 

“나는 수도원에 있지만, 내 시가 세상 날아다니며 위로천사 역할”

 

Q 수녀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쾌활한 모습을 뵈니 마음이 놓입니다. 이제 암에서 완치 되었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암 환자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제게 우려의 시선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제 이름을 치면 사망, 위독, 선종 같은 루머성 단어가 함께 뜬다네요. 투병한 지 9년 됐는데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고, 5년 안에 재발도 없었으니 큰 고비를 넘긴 셈이에요. 암이 3기라고 했는데 그런 데 반해서는 내가 식사도 잘 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해왔어요.

 

Q 사실 <기다리는 행복>의 책장을 열기 전엔 제가 이렇게 감동을 받을 거라고 예상 못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펼치는 순간 간결한 언어들이 주는 감동 덕분에 계속 울먹이면서 읽었어요.

 

수녀가 쓴 것이긴 하지만 크게 거부감이 없죠?(웃음)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1976년에 나왔으니 작품 활동을 한 지 40년 정도가 흘렀어요. 제 글이 불교든,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종교 관계없이 같은 감성과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친구가 되는 우정을 만든 것에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돼요. 독자층도 초등학생들부터 나이든 사람, 수감 중인 재소자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골고루이고요. 제 글이 배타적이지 않고 보편적인 정서 안에서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져서 울컥했다는 평가는 너무나 고맙더라고요.

 

Q 늘 큰 행복만 바라보며 결핍감에 시달렸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작은 행복, 그리고 기다리는 행복의 자세를 배운 것 같아요. 수녀님의 시 여러 편 중에 ‘기다리는 행복’이 책 제목이 된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979년도에 나온 <내 혼에 불을 놓아>라는 시집에 실린 가장 마지막에 실린 산문시가 ‘기다리는 행복’이에요. 나도 이 시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몇 년 전 가회동 성당을 지었던 송차선 신부님이 어느 날 나를 따라오래요. 그 분을 따라 방에 가보니 손바닥만한 액자 안에 깨알 같은 글씨로 이 시가 적혀 있는 거예요. 자신이 신학생을 그만두고 나가고 싶을 때 너무 힘이 된 시였다고 하면서, 사제가 된 기념으로 시를 쓴 액자를 선물로 주겠다고 해서 글방에 갖다 놨거든요. 이 시가 공감을 형성해서 한 신학생이 사제의 길을 걷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어요. 행복이 끊임없는 기다림과 인내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제목 같아서 그 신부님을 기억하면서 ‘기다리는 행복’을 제목으로 정하게 됐어요.

 

“지금껏 살아온 시간은 은총...나의 노력도 있었다”

 

Q <기다리는 행복> 후반부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법정 스님, 박완서 작가, 수감자 신창원 씨와 주고받은 편지가 실렸는데요. 수녀님과 편지는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독자들로부터 팬레터를 자주 받으신다고요?

 

저는 종이 편지해 온 사람들에게는 꼭 답장을 해줘요. 물론 이메일에도 답장을 하지만, 미지의 독자에게서 온 종이 편지에는 작은 엽서로라도 꼭 답장을 하지요.

 

Q 그동안 받은 편지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나요?

 

열거를 하자면 너무 많지만 초등학생들이 보내온 편지가 기억에 남아요. 지금껏 경탄의 감각을 드높이며 살자고 글을 썼지만 희생하고 극기하는 수도생활을 하다 보니 점잖게 행동하는 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한 독자와의 인연으로 그 반 학생들과 인연을 맺었고 지난 10월에는 제가 직접 아이들의 교실을 방문하기도 했지요.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이니 (경탄의 감각이) 저와 게임이 되겠어요? 손자·손녀 같은 아이들인데도 저를 만났을 때 무척 기뻐하고 두고두고 감동을 하는 거예요.“이해인 수녀님이 내 옆에서 사진을 찍으실 때 내 가슴이 쿵쾅거렸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기절할 뻔했다.”고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지요. 그렇게 아이들의 편지를 받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Q 그런 편지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보물 같은 것이네요.

 

글방 창고에 수십만 통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어요. 깨알같이 적힌 편지를 보면 너무 귀한 자료라 버리질 못해서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이에요. 아예 편지 박물관을 하나 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정사업본부에서는 가끔 제가 피천득 선생님, 장영희 교수, 법정스님 같은 유명 인사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빌려가서 전시를 하곤 하죠. 또 주고받은 편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가 상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친필 편지를 유족들에게 보내줄 때의 감동은 말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이름난 사람이 쓴 편지뿐 아니라 산골 소녀가 고민하면서 쓴 편지에도 모두 답장을 했어요. 그 중에 한 아이가 가족 모두가 자살을 하고 자신은 혼자 남았는데 따라 죽고 싶다고 편지를 해온 적이 있었어요. 제가 “두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지 왜 죽느냐”고 답변을 했었는데 그 편지를 받고 열심히 노력해서 마침내 미용사가 되었대요. 시간이 흘러 곧 결혼을 하게 됐는데 가장 고마운 사람을 떠올려보니 제가 떠오르더래요. 그 말에 감동을 받고 결혼 선물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나는 수도원에 살고 있더라도 시라는 것이 세상을 날아다니면서 위로천사와 희망천사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고맙고 울컥하더라고요.

 

 

“감사 더 깊어지고, 사랑 더 애틋해지고, 기도 더 간절해진 시간”

 

Q 그동안 이해인 수녀님 하면 종교 활동이나 창작 활동하는 모습만을 떠올렸는데, 오늘 뵙고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교류를 해오셨단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는 복덕방 같은 역할을 하려 해요. 제가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죠. 1987년도에 가출한 소녀가 있었는데, 수녀원에서 하루 재워주고 연락처를 알아내서 오빠한테 돌려보낸 적이 있어요. 많은 세월이 흘러서 자신이 낳은 딸과, 가출 했을 때 자신을 찾으러 온 오빠와 함께 저를 찾아온 거예요. 그렇게 당시에는 가출청소년들이나 미혼모들이 우리 수녀원에 많이 와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제 능력이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더 마음이 따뜻한 수녀님과 연결시켜주기도 했어요. 모르는 사람은 내가 꽃밭이나 산책하면서 시를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이웃의 눈물을 닦는 역할도 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제 시를 좋아해주었다고 생각을 해요.

 

Q 그렇게 주변 이웃을 돌보는 이야기들은 신문에도 나지 않으니까요.

 

수녀님은 책도 내면서 태풍이나 홍수가 났을 때 왜 성금 한 번 내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의 가난은 어디에 몇 천만 원 기부함으로써 누리는 약간의 성취감마저 포기하는 것이에요. 그런 기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요청이 왔을 때는 우리 수녀원 전체의 이름으로 하지요. 그래서 내가 수도자로서 살아온 54년을 자축하고 싶다는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 거죠. 인내의 노력이 맺어준 결실이니까요.

 

Q 책의 마지막 장에는 1968년 5월 23일 첫 서원 이후 일 년 간 메모식 단상을 적은 일기가 실려 있어요. 뭔가 특별한 결심이 담긴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시인으로만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수도자의 본 모습으로 살고자 노력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려는 뜻에서 넣게 되었어요. 5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날 것, 익히지 않은 초창기 수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2018년 5월 23일로 수도서원 50주년이 됩니다. 감회가 어떠신가요?

 

1964년에 입회했으니 수녀가 되는데 걸린 시간까지 계산하면 54년이 흐른 거죠. 지난 시간은 감사 더 깊어지고 사랑 더 애틋해지고 기도가 더 간절해진 시간이었어요. 제가 암으로 투병하면서 깊게 터득한 것이지만 일상의 당연한 것을 더욱 감사히 여기게 되고, 인간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사랑으로 애틋함이라는 단어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에 아픈 일, 슬픈 일이 일어날 때마다 기도가 더 간절해졌지요.

 

남들이 객관적으로 볼 땐 시인으로 유명세도 떨쳤지만 본인만 아는 눈물이나 어려움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시간도 있었어요. 지금껏 살아온 시간이 물론 은총이었지만 그것을 위해선 내 노력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공동체와 주변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아름다운 저녁 노을처럼 장식해야겠다고 생각해요.

 

Q 2018년 신년을 맞아 덕담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요새는 사람들이 인내심도 부족하고 막말도 잘 하고 쉽게 성급해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항상 선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본보기를 하나 정해 놓고서라도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인류에 선한 역량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실행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삶이 바른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새는 남을 밟고서라도 내가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허무해지고 속이 외롭고 병든 사람들도 많아져요. 새해에는 사색 노트도 쓰고 책도 열심히 읽으면서 내면을 가꾸며 마음을 돌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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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이해인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이자 시인으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과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왔습니다.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깨어 있는 영성과 남다른 감수성으로 말과 글을 연마해 왔으며, 날로 오염돼 가는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를 염려해 고운 말 쓰기에 관한 강연도 펼쳐 왔습니다. 특히 친근한 일상어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 시와 에세이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작은 기도] [작은 위로]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엄마] 등 십여 권의 시집을 냈고, 첫 산문집 [두레박]을 출간한 이래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꽃이 지고 나면 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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