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8.01.05 조회수 | 4,528

<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사랑의 완성이 ‘결혼’일까?”

소설가 정이현의 신작 <우리가 녹는 온도>(달/ 2017년)는 지난 2007년 출간했던 <풍선>과 <작별> 이후 꼬박 10년 만에 나온 에세이집이다. 그동안 북DB를 잘 살펴왔던 독자라면 이번 책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녹는 온도>에 소개된 10개의 에피소드 중 7개가 2017년 1월부터 6월까지 북DB에 사전 연재 됐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이야기와 산문이 결합된 독특한 구성 방식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빼고, 다듬고, 날렵하게 수정하는” 개고의 과정을 거쳐 3개의 에피소드를 더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우리가 녹는 온도>에는 각 도시 안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에 관한 10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에피소드가 마냥 낭만적이거나 풋풋하지만은 않다. 전해들은 이야기나 출판사를 통해 받은 실제 사연을 각색해 만든 에피소드 속에서 누군가는 만남을, 누군가는 이별을 준비한다. 연인, 부부, 모녀, 강아지와 아이 등 다루는 인물도 도시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에세이’와는 달리, 이야기와 산문이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모양새다. 얼핏 소설 같기도, 에세이 같기도 하다.

늘 도시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도시기록자’라는 수식어를 얻은 정이현. 이번에도 작가의 시선은 도시와 사람에 머물러 있지만, 소설인 전작 <상냥한 폭력의 시대>와 에세이인 <우리가 녹는 온도>의 온도차는 상당해보인다. “냉정하고 엄정한 시선보다는 작지만 반짝이는 무언가를 넣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됐기 때문일까. 지난 12월 20일,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이현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유독 깊어 보였다.

 

 

“세상에 이런 책 한 권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Q 지난해 상반기(2017년 1월~6월)에 북DB에서 단독 사전 연재를 했던 글입니다. 책을 가지고 독자들을 다시 만나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보셨더라고요. 북DB에 연재했던 분량을 책으로 옮기면서 에피소드는 더 추가됐는데 전체적으로 빼고, 다듬고, 날렵하게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Q 총 10개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사연을 각색한이야기와 산문이 결합된 형태예요. 소설과 에세이를 함께 읽는 느낌이에요.

애초에 소설을 쓰겠다는 목적은 아니었어요. 그건 분명했어요. 에세이를 쓰는데 좀 새로운 방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새로운 방식이 뭔지 몰라서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좀 길었어요. ‘세상에 이런 책 한 권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구성한 책이에요.

책에 실은 에피소드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한 거예요. 제가 어디선가 들었거나,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들이기도 하고요. 직접 사연을 받은 것도 있고요. 실제 이야기의 분량이 많아질 경우에는 모두 당사자들의 허락을 받았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저라는 사람이 대신 들려주는 방식이라는 점이 소설과는 명확하게 변별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다만 이야기를 그대로 갖다 쓸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이야기들을 혼합한다거나 그 와중에 제 경험을 넣기도 하고 그랬죠. 여러 방식이 자유롭게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소설 창작 작업은 아니지만 창작의 여러 방식이 한 데 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무겁다기보다는 재미있고 가벼운 방식. 그렇다고 울림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Q 새로운 방식으로 집필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재밌는 점이 더 많았어요. 사실 어려움은 소설을 쓸 때 더 많이 느껴요. <우리가 녹는 온도>는 4~5년 전부터 시작된 작업이라 중간중간 장편소설도 쓰고 단편소설도 썼거든요. 소설을 마감하면서 고통스럽고 힘들고 날카로워질 때 <우리가 녹는 온도>의 원고 파일을 열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쉽게’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쉽고 진도도 금방 나갔고요. 소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나 이거 썼다” 이게 잘 안 되거든요, 직업이니까. 그런데 산문은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오픈하면서 의견도 많이 들었어요. 세상에 있는 이야기를 내가 대신 전하는 느낌이랄까요. 깊은 성찰보다는 이 세상의 이야기들을 저만의 사유로 선택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훨씬 가볍고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Q 허구의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 작업 때와는 다른 부담감이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대로 가져온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변형을 했는데, 허락을 받을 정도로 실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 부분에서는 어디서 멈추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죠. 왜냐면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분들이니까요. 취재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지만 같은 이유로 다 밝힐수는 없을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랑에 대한, 도시에 대한, 두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죠. 특히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는 본인의 경험이든 타인의 경험이든 들려주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달 출판사에서 ‘사랑’에 대한 사연을 받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전, 혹은 과거의 사랑에 대해 보내주셨어요. 거의 미혼의 사랑에 대한 사연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반대로 ‘사랑이라는 게 꼭 그것만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의 완성을 흔히 ‘결혼’이라 말하는데, 결혼식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둘 사이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 외에도 친구에게 혹은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말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고요. 여러 사연들을 받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확장시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Q 앞서 잠시 이야기해주셨지만, 사실 <우리가 녹는 온도>는 5년 여전부터 시작한 작업인데요.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요?

카카오페이지가 런칭했을 당시에 그쪽에서 연재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담당 편집자였던 달출판사의 김지향 편집장님께서 제게 “전에 써둔 산문을 가지고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해보자”고 메일을 주셨고요.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굴하지 않고 “뭐라도 같이 하고 싶다”고 메일을 주시더라고요.(웃음) 다시 생각해보면 인연이죠. 저로서도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 수월하니 함께 하게 됐어요.

이후에는 출판사를 통해 ‘사랑’에 얽힌 사연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때 받은 대부분의 사연이 미혼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 사연들을 보면서 오히려 ‘사랑이라는 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랑 외에도 내가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말을 제외하고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확장시키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녹는 온도>에도 당시 카카오페이지에 실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때 쓴 초고를 보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요. 북DB에 연재를 하고 출간 전에 개고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책이 완성된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더 좋아요.(웃음)

 

 

“에세이는 고백의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 덕분에 용기낼 수 있었다”

Q ‘지상의 유일한 방’도 그렇고, 모든 에피소드의 결말이 열려있어요.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무엇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보니 당장 결론 지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어요.

Q 전작 <상냥한 폭력의 시대>가 도시 속에 깃든 크고 작은 폭력들에 주목했다면 <우리가 녹는 온도>는 사랑과 관계라는 측면에서 다른 시각으로 도시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상냥한 폭력의 시대>와 뭔가 결이 비슷한데 훨씬 따뜻하다고요. 그런데 <우리가 녹는 온도>의 이야기를 막상 읽어보면 모두 따뜻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아주 작은 기쁨의 순간들이 있죠. 세상이 낙관보다는 비관이 어울리는 곳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런 시선으로 도시나 제가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소설을 쓸 때보다는 자연인으로서의 제가 더 많이 들어있다는 의미겠죠? 그래서 냉정하고 엄정한 시선보다는, 작지만 반짝이는 무언가를 넣고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읽어주시는 분들이 그걸 저보다 더 빠르게 캐치해주시는 것 같아서 놀랐어요. 아마 <상냥의 폭력의 시대>를 보면서 ‘정이현의 문학은 이렇게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우리가 녹는 온도>를 보시면서 ‘이건 뭘까?’하고 또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Q 지난 북DB와의 인터뷰에서 ‘관찰자로서의 작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이번 책을 작업하시면서도 그 태도를 유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관찰자이고 싶고, 반드시 관찰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소설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에세이스트는 조금 다르잖아요. 가공할지언정 자기 의견, 자신의 이야기, 경험 등을 소설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에세이스트니까요. 그래서 ‘관찰자로서의 작가’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제가 과연 에세이스트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어요.

그동안 칼럼도 많이 쓰고 <풍선>과 <작별>이라는 산문집을 쓰기도 했지만, 제가 읽은 영화나 책을 가지고 글을 썼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날 것으로 고백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을 준비하면서 어떤 에세이스트, 혹은 에세이라고 할지라도 작가의 생각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날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환상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에세이도 완벽한 맨 얼굴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좋은 에세이스트는 작가로서의 자신과 글 속 화자로서의 자신 사이의 거리 유지에 대해 굉장히 많이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에세이가 고백의 문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이미 세상에 나온 좋은 에세이들이 영감을 줘서 나름 정제된 상태의 에세이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10년만의 에세이인만큼 이번 책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르실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정말 선물의 의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작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고 난 뒤에는 ‘좋지만, 너무 힘들었다’라는 리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책을 읽고 덜 힘들어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편하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사는 이 도시라는 세계, 그곳에서의 관계들에 대해 모두 따뜻하다고는 말씀을 못 드리지만 차가운 곳에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느껴지는 훈기, 온기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걸 <우리가 녹는 온도>에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녹는 온도’라고 했을 때 사실 그 온도가 몇도인지도 모르고, 또 온도는 모두가 다를 수 있잖아요. ‘내가 녹는 온도는 몇도일까’ 생각해보시면서 읽는다면 저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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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정이현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산문집 [풍선], [작별] 등을 펴냈다. 2004년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을 받았다. 2006년 [삼풍백화점]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해에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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