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2.26 조회수 | 6,983

신승훈, 성시경이 사랑한 작사가...심현보의 영업 비밀

 

누군가 정성스레 적어놓은 노트는 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살짝 들춰보고 싶은 유혹을 참기 어렵다. 호기심을 자극하듯 온통 핑크빛으로 무장한 표지를 가진 심현보의 <작사가의 노트>(살림/ 2017년)를 펼쳐본다. 친숙한 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는 게 없는, 알쏭달쏭한 작사라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뭐랄까, 이 노트는 작사가 지망생들을 위해 앞서 길을 걷고 있는 한 선배가 세심히 적어놓은 따뜻한 일기 같은 그런 느낌이다.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신승훈의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모세의 ‘사랑인걸’, 박혜경의 ‘하루’, 윤미래의 ‘시간이 흐른 뒤’처럼 제목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가사들을 쓴 작사가이자 싱어송라이터 심현보. 그의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남자가 어떻게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토록 섬세한 감성을 가질 수 있을까 늘 궁금했는데, 만나자마자 ‘내 귀에 캔디’처럼 고막을 강타하는 달콤한 목소리에 그 궁금증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작알못’(작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종일관 부드럽고 침착하게 ‘영업 비밀’을 공개하던 그의 목소리는 한 편의 발라드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인터뷰는 ‘일상이 노래가 되는’ 심현보의 가사로 태어난다면 어떤 노랫말이 될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 인터뷰였다.

 

“문학일까? 음악일까?...작사의 모호한 속성”

 

Q 그동안 작사법에 대한 책을 내자는 제의가 꾸준히 있었던 걸로 아는데 거절했다고 들었어요.

 

작사라는 장르가 참 모호해요.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음악에 넣어야 할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그동안 작사법에 대한 책을 거절을 했던 이유는, 저 스스로도 정돈이 안 돼 있어서였어요. 사실 가사를 의뢰받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과연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는지, 혹여 이걸 글로 정리해서 기법이랍시고 내놨는데 작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혼선만 주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어요. 그래서 이런 책은 필요없다고 결론을 내렸었죠.

 

Q 그럼에도 이번에 책을 내게 된 데는 특별한 결심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작사라는 장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제반 지식이 전혀 없잖아요. 그런 걸 정리해놓으면 기법으로는 큰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뭔가 기회를 찾는 사람들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가령 여행 책의 경우도, 잘 모르는 나라나 도시를 가게 되면 불안하니까 참고하려고 보는 거지 거기에 나온 대로 똑같이 다니지는 않잖아요. 그 정도의 의미는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 책 쓸 때 저도 가사 쓴 지 15년이 넘은 때라, 제 일에 대해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Q 기존에 출간된 작사법에 관한 책들과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책에도 여러 번 언급했는데, 사실 책에서 이야기한 부분은 제 스타일의 가사 쓰기일 뿐이지, 가사 쓰기의 정석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검증받은 확실한 기법도 아니에요. 제가 스스로 체득한 것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것들을 지켜나가면 가사라는 글쓰기에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었어요. 그래서 책 안에 언급한 가사들도 모두 제 가사예요.

 

제가 좋아하는 다른 분들의 가사도 인용하고 싶었는데, 그분들 의도와 다를 수 있어서 조심스럽더라고요.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좋아하는 가사들을 집중해서 듣고, 정독도 하고, 써보기도 하는 과정이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앨범 살 일이 없으니 가사를 읽는 재미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책 안에 정돈해놓으면 진짜 답

답한 사람에게는 작게나마라도 도움이 될 거 같았어요.

 

Q 작사법에 관한 책이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나 필사 분량도 상당해요.

 

이 책은 경계가 모호한 책이에요. 작사법 책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일상 속의 글쓰기에 관한 가벼운 에세이기도 하고, 실제 가사들을 직접 써볼 수 있는 필사북 같기도 하고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가사란 장르가 그렇게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인지 제 책도 가사를 닮았네요.(웃음) 가사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단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에피소드를 많이 넣었어요. 요즘은 일상 속에서 짧은 글을 쓸 일이 많잖아요. 가사라는 게 긴 글이 아니라 간단한 모티브로 쓰는 글들이 많아서 제 경험이 참고가 될 듯해요.

 

Q 그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은데요.

 

사실 이런 형태의 글은 처음 써봤어요. 10년 전쯤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그 책도 가사와 마찬가지로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감성적인 글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책은 무언가 설명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잖아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글쓰기라 처음엔 어색하더라고요. 책을 쓰는 데 6개월 정도 걸렸는데, 매일 오전에 규칙적으로 작업실에 나가 서너 시간씩 썼어요. 그렇게 매일매일 쓰니까 단련이 되더라고요. 작사처럼 뭔가 떠오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풀어내는 글쓰기라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작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단, ’상업’이라는 말이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져”

 

Q 많은 사람들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고 생각하지만, 모두 작사가가 되는 건 아닌데요.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작사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자기가 어떤 음악에 원하는 가사를 붙이고 혼자 좋아해도 가사를 쓴 건 맞아요. 하지만 앞에 ‘상업’이라는 말을 붙이면 이야기는 달라져요. 하나의 대중음악이 나오기까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 중에 작사가도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상업적으로 혹은 대중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인정받고 검증받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해요.

 

다시 말하면 가사 쓰기라는 장르적인 글쓰기를 계속 해나가서 자기 작품이 쌓이고 스타일이 만들어져 그 글들이 상업적으로도 의미를 가질 때 직업으로서의 작사가로 활동할 수 있는 거죠. 다른 글들과 달리 가사라는 장르는 먼저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해요. 곡이 있어야 가사를 쓸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을 어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가사를 많이 써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글쓰기를 해낼 수 있어야 해요.

 

Q 곡이 먼저 나오고 나서 가사가 쓰여진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어요.

 

상업음악은 거의 100퍼센트 곡이 먼저 만들어지고 가사가 그 다음이라고 보면 돼요. 작곡은 형태가 없는 감정이나 감각을 멜로디로 표현하는 거예요. 곡은 가사가 붙기 전까지는 스토리는 없고 이미지만 있어요. 그 음악을 들으며 작사가가 어울리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글로 표현해내는 게 가사라고 할 수 있죠.

 

Q 책에는 작사가에 대한 정의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스스로를 ‘사랑꾼’이라 생각하시나요?(웃음)

 

생각해보면 남자치고는 그런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다른 남자들에 비해 멜로 영화도 많이 보고, 글이나 책도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걸 많이 읽고요. 대중가요에 사랑 이야기가 많은 건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닌 공통적인 주제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사랑과 이별의 범주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아요. 30대까진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범주 안으로 가족이나 친구,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와요.

 

그런데 한편으로 대중가요는 되게 무섭고 잔인한 면이 있어요. 내일 음악이 나오면 다음날 몇 등인지 알 수 있거든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되게 무서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너무 연연하면 일을 못하겠더라고요. 요즘은 작업하는 동안 최대한 열심히 즐겁게 많이 고민하고, 제 손을 떠나면 내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 부르는 사람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크게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죠.

 

Q 이별 후에도 저주와 응징의 가사를 쓰지 못하는 작사가로 유명한데요.(웃음)

 

가사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캐릭터에 맞아야 해요. 제가 착해서 그런 가사를 못 쓰는 게 아니라, 그동안 작업해온 가수들에게 저주와 응징의 가사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못 쓴 거예요. 소위 말하는 ‘센 가사’에 어울리는 가수와 아직 작업을 못해봤어요.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속 시원하게 한번 풀어내보고 싶습니다.(웃음)

 

 

“발라드는 작사가, 작곡가 모두에게 궁극의 장르”


Q 오랫동안 작사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저는 시간이 나면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해요. 여행을 가면 생각밖에 할 게 없잖아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할 일이 자꾸만 생기거든요.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떠오른 생각은 늘 살던 곳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또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이제 제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어가는데, 사랑과 이별을 가장 많이 하는 20대들이 어떻게 만나 연애하고 헤어지는지를 모르면 가사를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많이 물어도 보고, 기회가 되면 어울리기도 하면서 부단히 애쓰죠.

 

Q 심현보라는 작사가를 말할 때 신승훈과 성시경을 빼놓을 수 없어요.

 

이 두 사람과 제일 많이 작업을 했죠. 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발라드 가수 두 사람과 꾸준히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저한테는 엄청 뿌듯한 이야기예요. 제 두 번째 작사를 신승훈 씨와 함께 하며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고, 성시경 씨는 데뷔 때부터 함께 했고요. 이 두 사람은 항상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한 노래를 하니까 작사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어요. 제가 쓴 가사인데 이 분들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아지니까요. 작업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요. 신승훈 씨는 꼼꼼한 스타일이라 디테일한 수정이 많은 반면 성시경 씨는 전체적인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성시경 씨는 맘에 들고 안 드는 게 분명한 만큼 미세하게 고치는 건 없죠.

 

Q "발라드는 작곡가에게 궁극의 영역이다"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요?

 

악기, 편곡, 연주 등 음악에서 필요한 힘을 다 빼고 피아노와 목소리, 기타와 목소리만으로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장르가 발라드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가도 좋은 발라드 한 곡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로 능력이나 구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봐요. 그만큼 감상용 음악으로 발라드를 잘 쓴다는 게 어려워요.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슬픈 발라드 부르는 걸 힘들어해요.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으면 그런 노래가 안 나오니까요. 작사가도 마찬가지예요. 슬픈 가사를 쓰면 마치 내가 헤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 그런 감정으로 쓰지 않으면 겉도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으니까요.

 

Q 이 책에서 꼭 기억했으면 하는 한 가지를 꼽아주신다면요?

 

일상 속에서 무엇인가를 느끼며 사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돼요. 저를 포함해 너무 메마르게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 스쳐 지나가며 사는데, 그날그날 겪었던 것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 의미 있던 게 뭐였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하며 살기를 바라요. 저한테는 그게 가사 쓰기거든요. 저는 일상 속에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물론 이런 과정이 저에게는 직업으로 연결돼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노력들이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저는 또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작게 조각 내서 생각해보는 연습을 많이 해요. 그게 많으면 행복해지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거예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자주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면 시간을 만들 수 있거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해야 할 것만 하고 사는 거죠. 이 책이 독자에게 일상 속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해내, 그걸 글로 짧게라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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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심현보

작사가이거나 작곡가 혹은 싱어송라이터. 말하자면 음악을 하거나 글을 쓰며 산다. 봄과 맥주, 공원과 여행을 좋아하고 사사롭고 소소한 순간들을 시시콜콜 기억하는 일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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