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2.06 조회수 | 2,927

'해외 취업의 여신' 레이첼 백 "토익 430점이던 내가 글로벌 노마드 된 비결은..."

​[기사 수정 : 12월 8일 오후 3시 52분]

 

 

경기도 작은 도시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성적에 맞춰 들어간 전문대 러시아어학과.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한 시험에서 전공인 러시아어학과에서는 모두 떨어지고 딱 한 군데 붙었던 곳이 지방대 영어영문학과였다. 간단한 인사말조차도 힘들었던 영어 실력으로 2년간 피나게 노력해서 받은 토익 점수는 430점. <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원더박스/ 2017년)의 저자 레이첼 백은 ‘스펙이 없는 것이 스펙’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그녀가 호주, 미국, 캐나다에서 네 번이나 해외 취업에 성공해 마치 여행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일상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모국어를 쓰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취업이 힘든 현실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으면 그런 결과를 얻었을지, 그 치열하고 험난했던 과정을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나타난 레이첼 백에게서는 치열하고 당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웃음도 많고 수줍음도 많은 이웃집 언니 같았다.

 

내세울 것이 전혀 없던 그녀가 글로벌 노마드족으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런 편안함에 있었다. 목표를 정하고 독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애초부터 그녀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쉬엄쉬엄 가는 것을 택했고, 해외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당당히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까지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려는 방향만 맞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믿으며 “그저 반 발짝이라도 앞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는 레이첼 백의 이야기는 ‘꼭 한국에서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의식을 심어준다.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까지 12년

 

Q 자칭타칭 '해외 취업의 여신’이라고 불리는데요. 이 별명은 어떻게 갖게 됐나요?

 

저는 사실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지은 건데, 부정적인 느낌도 있나 봐요. 제 이야기는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게 됐는데, 원래 닉네임은 ‘마법소녀 레이첼’이었어요. 꿈을 꾸면 마법처럼 다 이뤄진다는 의미로 지었죠. 그런데 해외 취업에 대한 코칭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대단하다면서, ‘해외 취업의 신’이라고들 말씀하시더라요. 언니한테 웃으면서 이야기했더니, ‘너는 여자니까 여신이지’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썼더니 반응이 너무 좋아서 아예 닉네임을 ‘해외 취업의 여신’으로 바꾼 겁니다.

 

Q 언제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홍정욱의 <7막 7장>, 조안 리의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등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외국에 대해 동경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캐나다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간 경험이 꿈의 시초가 되었어요. 일자리만 얻을 수 있으면 충분히 오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8개월 간 머물렀어요.

 

Q 그럼 그 후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한 건가요?

 

사실 그때 처음으로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당시엔 준비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영어도 부족하고, 졸업도 안했고, 사회 경험도 없고, 무엇 하나 조건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캐나다에 몇 개월 간 살면서 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게 됐죠. 이때만 해도 막연했던 것 같아요. 가령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봤는데, 먹고 싶다는 느낌 정도라고 할까요?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위해서는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단지 먹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어를 쓸 수 있는 직장을 고르고, 대학원에 가고, 호주로 인턴십을 가고, 한국에서 유학원을 운영하고, 이것을 기회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취업을 하고, 드디어 11년 만에 캐나다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된 겁니다.

 

Q 해외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11년이나 걸렸다고 하면,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을 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그냥 천천히 하고 싶은 대로 한 거거든요. ‘만약 거기서 취업이 안 되면 여행 왔다 셈치지 뭐’ 이런 마인드였어요.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어떤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물어볼 곳이 없었다는 점이에요. 그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가르쳐주었다면 훨씬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거예요.  

 

 

 

반 발짝만 가더라도 앞으로 가자

 

Q 그럼 지금은 어떤 식으로 해외 취업 컨설팅을 하고 있나요?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이나 다른 나라 오고 가면서 컨설팅을 해주고, 강의하고, 글을 쓰면서 지내고 있는데, 아주 만족해요. 지금은 지인의 회사에 적을 두고 블로그를 통해 의뢰해오는 고객들에게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데, 조만간 정식으로 법인을 만들 계획입니다. 제가 만난 분들을 보면 나이도, 경력도, 직업도 무척 다양해요. 저는 영문 이력서 코칭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요. 해외 취업을 하려면 일단 서류전형에 합격해야 하는데 혼자서 외국 방식을 따라 하기는 힘든 부분이 많거든요. 기초부터 각자의 스토리가 담긴 이력서로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합격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그러면 그 다음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여기서부터 자신감이 생겨요. 이제부턴 실전 면접을 코칭하고, 이 과정에서 몇 번씩 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드디어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Q 한국에서도 해외 취업에 관한 강의를 많이 하신다고요.

 

제가 블로그를 운영한 지 7년 정도 되었어요. 언제부터인가 친한 이웃들이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대학이나 기관에서도 SNS를 통해 연락이 와서 4년 전부터는 1년에 3번 정도씩 한국에서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영문 이력서 쓰는 방법과 해외 취업에 대한 동기 부여에 관해 주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저는 주로 후자를 강조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자신이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정말 가고 싶은지, 뭘로 가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아야 방향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제 프로필만 보고도 용기를 많이 얻으십니다. ‘여기서 실업계 나온 사람 있느냐’ ‘대학 3학년 때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 사람이 있느냐’ ‘토익 점수 430점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면, 다들 저보다 낫기 때문에 모두 불끈 희망을 가지시죠.(웃음)

 

Q 본인 스스로도 말했듯이 ‘스펙이 없는 게 스펙’인 사람이 글로벌 노마드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닐까요? 이런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저는 환경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어요. 저는 한 번도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 자기계발을 하지 않은 친구들보다 전문대에서 열심히 꿈을 키운 제가 더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안될 거라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강요하는 한국의 교육이 이런 부작용을 낫는 게 아닌가 싶어요.

 

비교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혹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긍정적으로 발전해 있는지 스스로 묻는 거라고 생각해요. 느리게 가더라도 늘 앞으로 걸었고,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은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반 박자를 가더라도 가야 할 방향으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더니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달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경쟁에 치이고, 남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저 같은 사람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나가본 사람으로서 한 말씀 해주세요.

 

한국이 잘 맞으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런데 꼭 한국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면, 나가보면 훨씬 더 새로운 세상이 있는데 굳이 좁은 한국 땅에서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가령 프랑스, 태국, 이태리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옵션이 있는데, 굳이 한국 음식만 매일 먹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그런데 프랑스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먹어보니 내 입맛에는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 판단은 자신만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일단 먹어봐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죠. 외국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살아봐야 자기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어요.

 

결론은, 일단 취업만 된다면 해외로 나가서 살아보니 아주 좋더라는 것입니다. 삶이 훨씬 여유로워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아직 성격이나 능력이나 모든 것이 완성이 안 된 상태잖아요. 어렸을 때 먹어본 음식이 다양하면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음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젊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으면 나이가 들었을 때 훨씬 더 성숙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굳이 한국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젊은이들이라면, 꼭 한번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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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레이첼 백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지방 전문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지방 4년제 대학교로 편입하여 영어를 배웠지만 스펙 없는 것이 스펙일 만큼 평범한 20대였다. ‘천천히 가면 어때. 앞으로만 가면 되지!’ 내세울 것은 없지만 서두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듯 꿈을 향해 해외로 나갔다. 배낭여행 중에 운명적으로 만난 영국 출신 지구 여행자에게서 엄청난 감동과 흥분을 느낀 그. 자신의 영어 이름도 영국 출신 여행자와 똑같은 레이첼(Rachel)로 짓고, 자신 역시 지구 여행자로 살기로 결심한다. 자기를 위한 일과 삶을 찾아 도전을 멈추지 않는 레이첼은 호주, 미국, 캐나다의 크고 작은 여러 일터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함께 일하며 글로벌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캐나다에 살면서 강연자,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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