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1.24 조회수 | 2,427

김지수 기자 “시 읽기는 못나고 비참할 수 있는 자신으로의 여행”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 격언은 게으름을 꾸짖기 위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조금 우습다. 슬퍼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꿀벌의 처지는 무엇이 그리 나을까?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제 감정을 돌아볼 기운도 시간도 없이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 SNS에서 화려한 이미지로 슬픔을 지우기 바쁜 사람들.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초상이다. 그래도 끝내 양보할 수 없는 슬픔의 성역이 있다면 ‘시’일 것이다. 세상 밖에서는 치열한 경쟁에 낙오자로 평가받아도 시는, 손바닥만한 시집은 끝까지 아름다운 언어로 팔 벌려 우리를 안아줄 것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기자는 “우리 모두 코미디언이 될 수 없기에 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들이 당신의 슬픔이 흘러가도록 심장의 물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시들이 당신의 연약함이 숨을 쉬도록 마음의 샛길을 내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껏 시인과 아나운서의 꿈을 절충해 기자가 되었다고 말해 온 그녀가 다시금 감춰둔 시에 대한 연정을 드러내며 시 읽어주는 사람을 자처했다. 6년 전 출간됐던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가 새로운 이름과 내용으로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이봄/ 2017년)라는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것. 6년 전 책 내용의 50%를 덜어내고 그 자리를 ‘슬픔’을 화두로 한 시들로 채웠다.

 

“사람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매우 큰 상처를 받았거나 그로 인한 슬픔으로 견디지 못할 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상담 치료를 받잖아요.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고 내 이야기에 충분히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과 어울려서 그걸 나누는 거죠. 이런 과정은 정말 못났을 수도 있고 비참할 수도 있는 그런 나 자신으로의 여행이거든요. 시 읽기 역시 그런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해요.”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는 윤동주, 기형도와 같이 익숙한 시인의 시부터 조금은 새롭지만 읽어보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젊은 시인들의 시까지 균형감 있는 목록으로 구성됐다. 각 시들에는 김 기자의 조금은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와 함께 친절한 해설이 덧붙었다. 그녀를 인터뷰한 건 11월 초, 서울 정동의 북적이는 카페였다. 책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평소 그녀의 인터뷰 기사에서 발견된 섬세한 시선의 비결에 대한 궁금증 역시 풀리는 시간이었다. 그 대답은 바로 ‘시’였다.

 

 

 

“시집을 읽는 내 몸의 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보세요”

 

Q 6년 전에 나온 책에 반 정도를 덜어내고 반 정도를 새로 채우셨는데요. 새롭게 시를 고른 기준이 있었나요?

 

일단은 쉬우면서도 일상의 감정들을 터치하는 시를 고르려고 했어요. 이규리 시인의 ‘웃지마세요, 당신’처럼 어머니의 영정사진 찍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시도 있고 이장욱 시인의 ‘동사무소에 가자’에 등장한 관공서 풍경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이 모두 들어가 있잖아요. 시와 내 생활을 겹쳐서 얹어볼 수 있고요. 반대로 정영 시인의 ‘권오준씨’ 김소연 시인의 ‘포개어진 의자’처럼 문학적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는 모던한 시들도 골라봤어요. 김지녀 시인의 ‘밥을 주세요’처럼 언어가 마구잡이로 천둥치듯 내달리는 시도 있고요.

 

Q 무엇보다 윤동주 시인이나 서정주 시인같은 유명 시인 사이에 생소하고 낯선 할머니 시인들의 시들도 함께 실려 있어서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정식 시집 출간된 적도 없는 시인데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할머니들이 처음 한글을 배워서 시화전을 열었다는 기사를 읽고 굉장히 감명 깊어서 가슴 속에 새겨두고 있다가 이번 책에 소개하게 되었지요.

 

Q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에 소개된 시들을 보면 시대적으로도, 취향 면에서도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합니다. 이렇게 시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시인의 꿈도 꾸었을 것 같은데요.

 

어릴 땐 오빠가 시를 자주 지었는데 그걸 보고 나도 시를 지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초등학교 때는 혼자서 시집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때 나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시인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문학회에서 시를 한창 쓰기도 했어요. 그때 함께 소설가 박민규 씨도 문학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선배 중 한 명이었어요. 요새는 시 쓰기를 전업으로 해서 사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시를 읽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는 시에 관해서는 쓰는 것보다 읽는 쪽에 조금 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고요.

 

Q ‘시알못(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몰랐던 시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고, 시를 해석해 내는 새로운 방법이 방법을 깨닫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시집을 대하기가 낯설어요. 시집은 언제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건가요? 시는 소설처럼 속으로만 읽는 건지 낭독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시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저는 두 가지 다 해요.(웃음) 모두가 잠든 밤 혼자 서가에 들어가서 스탠드 등을 켜놓고 군데군데 꽂힌 시집을 찾아내요. 그런 다음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읽을 때는 자기 안으로의 잠입이 일어나지요. 반대로 어떤 일요일 오후에 안락의자에 완전히 몸을 기대고 시집을 읽을 때도 있어요. 그때 시집을 양손에 딱 끼고 의자를 흔들흔들 하며 밖을 내다보며 읽을 때는 내 의식은 바깥으로의 항해가 돼요. 책장과 풍경의 갈피가 같이 넘어가는 거예요.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같은 경우는 주로 밤에 혼자서 읽게 되고, 서정주 시인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같은 시는 풍경과 함께 읽게 되죠.

 

Q 각자의 시 읽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도 시 감상에서 중요하고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시를 읽는 요소로써 포즈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을 보면 예술작품 안에서 책에 몰입한 여자의 목선이나 그 여자가 담긴 구도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지에 대한 묘사가 나오거든요. 그런 예술작품의 풍경 안에 들어갈 때 시집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시집을 볼 때 자기 몸의 선이 굉장히 아름답고 지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시를 읽는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서 내가 등장한 한 편의 연극 안에 들어가는 거죠. 소설의 내러티브를 읽는 것과는 달라요.

 

Q 굉장히 탐미적인 접근이네요. 어떻게 보면 슬픔과 아름다움도 먼 듯 하지만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요.

 

적당히 나를 달랠 수 있는 슬픔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기연민으로 허우적대는 게 아니라 슬픔의 정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맑아지는 것. 슬픔을 과장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말끔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름답고 품위 있다고 느껴요. 나는 굉장히 슬프거나 굉장히 경이로울 때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시, 슬픔을 모욕감 없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내는 문학”

 

Q 요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문화 트렌드는 빠른 속도, 굉장한 정보량을 앞세우는 것 같아요. 시를 읽는 것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행위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지요. 시야말로 어쩌면 진짜 사치일 수 있고요. 자본주의는 건강해야 하고 성취해야 하고 나아가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시는 완전 반대편이에요. 내가 살면서 내린 결론은 인생에서 행복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행복은 자꾸 바뀌어요. 슬픔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슬픔을 어떻게 다루는 방식에 따라 나에 대한 진정한 자아존중감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Q 가장 최근에 기자님을 위로했던 한 편의 시는 무엇인가요?

 

박준 시인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가 그랬어요. 요새 슬픔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전헌이라는 철학자가 “슬픔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거든요. 어린 시절에 아이가 슬퍼서 엄마 무릎에 와서 목놓아 충분히 울 수 있게 해주면 그 아이는 다 운 뒤에 뛰어나가서 놀 수 있대요. 그런데 그 슬픔을 막으면 아이는 억압 때문에 오히려 엇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공감이 되더라고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슬픔을 타고난 존재예요. 왜 슬프냐면 나와 남이 다르잖아요. 부모자식간에도 그렇고. 연인 간에도 그렇고. 내가 네가 될 수 없고 네가 내가 될 수 없는 다른 존재이고, 절대로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고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헤어져야 하는 존재예요. 그 헤어짐에 대한 슬픔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정서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인간은 근본적으로 슬퍼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 슬픔을 모욕감 없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내 주고, 내 안의 슬픔을 바라보는 내시경의 역할을 해주는 게 시인 것 같아요. 시만큼 슬픔이 자랑인 장르가 어디에 있나요?

 

Q 평소에도 기자님 기사를 읽으면서 문학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기본적으로 나는 어떤 글을 쓰든, 그것이 인터뷰 기사든, 문학비평 기사든, 여행 기사든 한 편의 시처럼 쓰려고 해요. 한 편의 산문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써요. 수미쌍관을 쓰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문학적 수법도 사용하죠. 패션잡지 ‘보그’에 있을 때는 모든 장르를 다 하려고 욕심도 많았고 모든 플롯의 글을 써보려고 시도했었죠.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주로 기사가 유통되니까 형식 실험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쉬워요.

 

Q 가장 아끼는 시를 한 편만 꼽아주신다면요?

고은 시인의 ‘사치’인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나에겐 헤어짐과 슬픔의 정서가 우선한 것 같아요. 시의 내용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느날 누이와의 애착이 끊어지면서 헤어지는 거잖아요.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시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정서가 그것이었어요. 말할 수 없는 슬픔, 그걸 고은 시인이 ‘사치’에서 절절하게 담아낸 것 같아요.

 

 

“시 낭송…자신의 가장 내밀한 속을 내보이는 고백의 형태”

 

Q 시를 안 읽을 때 즐기는 다른 취미도 있으세요?

 

영화 좋아하죠. 저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저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어떡하죠?(웃음) 결국 아무것도 못 되었지만 시를 읽는 여자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Q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여배우들’에 출연도 하셨었죠.

 

우연히 이재용 감독 지인과 연결이 되어 출연하게 됐어요. 당시 제가 몸담았던 ‘보그’를 배경으로 찍고 싶다고 제안이 왔고, 소규모 극장에 개봉할 줄로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해 응했죠. 이렇게 대규모로 개봉하고 10년이 넘도록 회자될 영화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여담으로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 중에 고현정 씨가 시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때 이성복 시에 관해 많이 이야기 하곤 했죠.

 

Q 요즘 시 바람이 다시 분다고들 하는데요. 기자님께서는 어떻게 보세요?

 

얼마 전에 ‘보그’ 편집장인 후배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모델 장윤주 씨와 배우 유아인 씨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이성복 시인 이야기가 나와서 각자 좋아하는 시를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했대요. 그 경험이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번 신제품 런칭 행사를 시 낭송회처럼 기획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나는 누구의 어떤 시를 좋아해’라고 하는 게 굉장히 짧고 깊이 있게 비밀을 나누는 것 같은 낭만적 고백이 될 수 있어요. 이제까지 유치하거나 못됐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나는 누구의 무슨 시를 좋아해’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확 열릴 수도 있고요.

 

Q 자신의 시 취향을 내보이는 것이 가장 내밀한 고백이 되는 거네요.

 

마치 비밀 이야기를 나눈 것과 같은 관계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가방에 시집을 한 권씩 넣어서 다니면 좋겠어요. 또 각자 자신만의 시 한 편 정도는 외울 수 있는 낭송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좋아하는 시 읽어줄게”하고 그 페이지를 펴서 읽어주면 어떨까요? 어떤 문학의 장르가 이렇게 한 마디로 인간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겠어요?

 

Q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짓는 질문입니다. 시 감상자로서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이 책이 사랑받으면 계속 시 감상 책 시리즈를 내고 싶어요. 그리고 이 시리즈가 잘 되면 나에게 가장 슬펐던 기억들을 같이 갖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를 할 거예요. 상처받은 십대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행사도 열고요. 시를 통해서 내가 직접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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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김지수

패션지 [보그]의 피쳐 디렉터를 거쳐 [조선비즈]에 몸담고 있다. [밀란 리브레리], [밀란 포셰] 시리즈 등의 글을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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