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1.17 조회수 | 9,253

루시드폴 “6집 앨범 이후 벽 만난 느낌… 도시 떠나니 뭘 원하는지 알게 돼”

루시드폴(Lucid Fall)은 가수다. 곡을 직접 쓰고 부르니 정확히는 ‘싱어송라이터’다. 그전에 화학공학을 전공한 화학자라는 소개를 먼저해야 할까. 아니, 이제는 제주도에 거주하는 청년 농부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모든 것 이전에 한 아내의 남편이자 강아지 '보현'의 반려인이라는 소개를 먼저 해야 할지도. '루시드 폴'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그의 역할이 몇년새 이렇게나 다양해져 있다.

그가 2년 여만에 8집 앨범 <모든 삶은, 작고 크다>(예담/ 2017년)로 돌아왔다. ‘해거리(과일나무에서 과일이 많이 열리는 해와 아주 적게 열리는 해가 교대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현상)’를 겪은 나무처럼 풍성한 음악과 이야기를 들고서. 그런데 음반이 조금 독특하다. ‘에세이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음반은 꽤나 두꺼운 책에 음악 CD가 결합되어 있는 형태다. 그는 원고지에 육필로 써내려간 제주살이의 기록과 생애 첫 음악 공간인 ‘오두막’에서 탄생한 음악들을 이 에세이 뮤직에 담아냈다. 2년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음악과 글을 통해 그의 삶 일부를 들여다 본다. 그 안에는 가수, 농부, 남편, 화학자, 또는 여전히 성장 중인 마흔 세 살의 한 남자가 있다. 좀처럼 공개한 적 없던 그의 사적인 이야기도 함께다. 그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가치를 음악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지 그 시선을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의 첫 인상은 책에 담긴 필름 사진들의 분위기만큼이나 따뜻했다. 언젠가 한 번 만났던 누군가를 반기는 사람의 모습처럼. “감명 깊은 구절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기자에게 “혹여, 책이 더 필요하다면 편히 말해달라”라며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하던 루시드폴은 책에 담지 못한 지난 2년 간의 이야기들을 차분히 들려주었다.

“유희열과 김동률, 책과 음반 결합 시도 지지해준 동료들”

Q 이번 음반은 책과 CD가 결합된 ‘에세이 뮤직’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책이 꽤 두꺼워요. 글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요?


‘6분의 1’이라는 글을 가장 먼저 썼는데, 그때가 봄이었나. 가물가물하네요. 함께 사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라서 쉽게 첫 글로 쓸 수 있었나 봐요. 그때 ‘에세이집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여행을 다녀와서 기행문을 써볼까도 생각했고, 동화나 소설 같은 것을 써볼까도 고민했었는데 자연스럽게 써지는 글은 모두 수필이었어요. 전 ‘수필’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요. 아무튼 강아지에 대한 글을 쓴 게 처음이었고 그때가 봄이었어요. 이후에 5~6월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6월 이야기’가 나왔고요. 마지막 글은 늦여름? 초가을 쯤이었던 것 같아요.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는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음반 작업도 사실 마찬가지고요. 작업 과정 중에 모은 것을 담는 ‘모음집’의 느낌이거든요.

Q 음악과 글을 함께 살펴본다는 건 즐거운 경험이에요. 음악을 들으면 작업의 뒷이야기를 떠올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번 음반은 그걸 미리 충족해주고 있잖아요.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고요. 동료 가수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작년 안테나(소속사) 레이블 공연 때였어요. 그게 9월이었나. 한창 연습할 때였는데 (유)희열이 형이 뭘 보셨나 봐요. “야, 그거 진짜 웃기더라” 그러는 거예요. 홈페이지에 올린 만화를 봤나봐요. 그래서 “다음 음반은 책이랑 같이 낼까?” 물었더니 “어, 만화같은 것도 막 넣어. 다 넣어, 다!” (웃음) 제가 “쉽지 않을 텐데, 형. 유통과정도 다르고…”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음반과 책을 같이 내게 됐네요. 저는 참 신기한 게 ‘이게 될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김)동률이 하고도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서로 갖고 있는 고민들을. 음반에 대한 고민도 자주 나누거든요. 싱글을 내야 되나, EP를 내야 되나, CD를 내야 되나, 이런 고민들이요. 뮤직비디오는 왜 찍는지, 배우를 출연 시키네 마네 하는 것들. 큰 힘이 되는 친구죠. 평소처럼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다가 동률이가 그러더라고요. “넌 책이랑 (음반) 같이 내도 될 것 같아”(김동률 성대모사를 완벽하게 했다. – 기자 주) 동률이 성대모사를 제가 되게 잘해요. (웃음) 다만 동률이가 걱정한 건, 과연 책과 음반을 함께 내는 게 음반사와 출판사에 둘 다 윈-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거든요. 테크니컬한 부분이니까 저도 잘 모르고, 동률이도 잘 모르는 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런 것에 문제만 없다면, 제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 아는 사이라서 지지해줬어요.

 

Q 책과 음반은 작업 과정이 좀 다르잖아요. 각각 완성해야 하는 데다가 서로 밸런스도 맞아야 할 거고요. 작업 과정에서의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일단 제가 소화해야 하는 절대량이 너무 많았어요. 동률이는 그걸 제일 걱정했어요. “네가 이걸 다 할 수가 있느냐. 이 타임라인에.” 그런 걱정이었던 거죠. 저도 자신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시간이 끝나면 (결과물이) 나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 사이에 나는 나를 얼마나 학대할 것인가가 걱정이긴 했죠. 살은 몇 키로나 빠질 것인가. 그런 고민들을 했지만 의외로 글 쓰는 건 물 흐르듯이 진행됐어요. 교정 과정은 좀 힘들었지만 초고를 원고지에 썼던 것치고는 ‘아, 이게 의외로 나랑 잘 맞나보다’ 했어요.

제가 약간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난 음반에 15곡이 수록됐는데, 이번에는 11곡을 썼거든요. ‘11곡이면 지난 번 작업했던 것에 60퍼센트만 하면 되겠지. 나머지 40퍼센트는 글 작업에 쓰면 되고… 올해는 귤도 별로 안 달렸으니까 가능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녹음도 해야 하고, 믹싱도 해야 하고. 그런데 어떻게… 잘 끝났네요.

Q 책에 2년에 한 번씩 음반을 내는 것과 해거리를 비교해주셨잖아요. 이번 음반은 2년 간의 어떤 이야기를 담아둔 음반이라고 생각하세요?

음반 작업은 정말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거든요. 이번에는 곡 작업을 하고 녹음하는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공간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오두막(음악 작업 공간)’이 정확하게 1년 전에 착공을 했어요. 오늘이 2017년 10월 31일이니까 작년 11월 1일에요. 그때만 해도 음반 제목이 ‘노래하는 집’이 되겠다는 예상을 했었죠. 거기서 만든 노래를 담은 음반이 될 테니까.

출판사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오두막’에 초점을 많이 맞춘 상태였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오두막 얘기가 안 나오는 거예요, 거의 마지막까지. (웃음) 하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가 많았나 봐요. 무비카메라로 찍어놨던 동영상 중에서도 오두막 영상이 많았고 사진도 그랬고요. 그런데 막상 오두막에 대한 글은 거의 마지막에 쓰게 되면서 역으로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 됐어요. 사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부제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부제가 본제가 됐죠.

Q 출판사 분들과 음반에 대한 논의를 미리 하셨다고 했는데, 8집 음반 작업을 에세이와 결합하겠다는 논의는 꽤 오래 전부터 얘기 되고 있었나 봐요.

아니에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형태였으면 좋겠다’ 그런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 사실 이제는 CD라는 매체가 사실상 큰 메리트가 없거든요. 물론 저는 친구나 후배들이나 누군가가 내면 사지만 그건 서포트의 개념인 거죠. 예를 들어 효리가 음반을 내면 사고 회사 식구들의 음반이 나오면 사고요. 그건 연대의 의미죠. 아니면 쉽게 살 수 없는 음반들을 일본이나 남미에서 직접 산다든지 하는 정도예요. 실제로 음질적으로도 CD보다 더 좋은 음질의 디지털 음원도 있거든요.

CD라는 하나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굳이 말하자면 CD 안에 들어간 북클립을 확장시킨 ‘책’이라면 이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뭐랄까, CD가 2D라면 책과 결합이 될 때 2D를 겹쳐 놓은 3D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거기에 제가 그동안 찍은 영상이나 사진 등의 미디어가 결합되면 더 풍성해질 거고요. 지난 음반에도 시도는 했었지만 이번에는 책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분들과 함게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게 됐어요. 글의 형태도 처음부터 에세이로 정하진 않았는데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요.


“제주에서는 1년을 살아도 같은 날이 없다... 모든 것이 자극으로 다가와”

 

Q 제주에 내려간 뒤로 생긴 변화가 여러모로 많죠? 주변 환경의 변화는 당연한 거고 내면적으로 달라진 부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내가 뭘 원했던 건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됐어요. 제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그렇고 아내도 계속 도시에서만 살았거든요. 그것도 굉장히 번잡한 동네에서. 어떻게 보면 정말 무모하지만 시골에서 살고부터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실제로 나에겐 그리 좋은 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부분도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딱히 서울의 삶에서 그리운 게 없어요. 반면 어떤 분들은 적응을 못하고 다시 도시로 가는 분들도 많은데, 다행히 저는 시골 생활이 좋아요. 이제는 도시에서 사는 제 모습이 잘… 상상이 안 가요. 운이 좋게 나에게 더 맞는 곳으로 와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Q 잠깐 아내분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내에 대한 글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워낙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 하시니까 내용 자체들이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고요.

사적인 이야기니까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 삶의 패턴이 너무 심플해서. 하루 대화의 99퍼센트를 아내와 하니까요. 나머지 1퍼센트는 보현이(강아지)랑 하고. 둘의 이야기를 뺄 수 없죠. 그래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아마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음반 작업하는 동안에는. 보통은 일을 나눠서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농장일을 더 많이 해야 하니까요. 농장일이 되게 거칠거든요. 트럭 모는 일이나 비료 나르는 것만 빼고 아내가 다 해요. 작년에는 제가 주로 하다가 올해는 도저히 음반 작업과 병행이 힘들어서 많이 가르쳐주고 나눠서 했죠. 많이 미안해요. 다음 음반 작업할 때는 ‘이 패턴은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싱글을 내야 하나 고민도 되고요.

Q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는 건 아내에게도 큰 변화였겠네요.

결혼하기 전에 꽤 오래 같이 살았어요. 제주에 내려갔을 당시도 결혼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위화감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결혼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가서는 많이 싸웠어요. 돌이켜보면 둘의 문제로 싸운 일은 별로 없었고, 주변과의 관계 문제, 새로 생긴 가족들과의 문제, 혹은 주변 이웃들과의 문제들이었어요.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가에 대한 입장이 달랐던 거죠.

아내는 단독자적인 기질이 많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저보다도 훨씬 부드러운데 심지가 굉장히 굳은 사람이에요. 저는 일단 우리가 들어온 사람들이니 어떻게든 적응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요. ‘일단은 맞춰야 한다’라는 생각이었어요. 당시에는 저희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의존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어찌어찌 논도 생기고 밭도 생기고 조금 숨통이 트이면서 아내가 원하는 거리, 어쩌면 저도 원했던 거리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웃들이 배려심이 좋아서 지금도 좋은 관계 유지하면서 잘 지내요.

Q 그런 변화들이 이번 음반에도 많이 반영되었죠?

네. 서울에서 만든 마지막 앨범이 6집 앨범이었는데 그때 그런 조짐은 있었어요. 매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쌓여서 노랫감이 되는데, 벽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그 말은 결국 서울이라는 곳에 살면서는 아무리 애를 써본다고 한들 큰 다이나믹스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인 거죠. 회사를 다니면 또 모르죠.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자극 받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니까요. 그때는 많이 막혀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똑같은 곳에서 1년을 살아도 매일 같은 날이 없어요. 과수원에서 자라는 풀이 매년 다르고, 바닷물의 색도 매일 다르고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다 자극으로 다가오죠.

Q 이번 음반에 실린 곡 중에서, 조금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는 노래가 있나요?

다 사연이 있지만 ‘부활절’이라는 곡. 정말 부활절 전날에 썼는데 그 곡이 쓰여짐으로써 다른 곡들이 봇물처럼 쫙 나오게 된 계기가 됐어요. 아, 쫙- 은 아니고. 찔끔 찔끔. (웃음) 어쨌든 첫 곡이 제일 힘들기도 하고,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저에게 의미가 있는 곡이에요. 듣는 분들은 ‘그냥 잔잔하네, 졸리네.’ 생각하시겠지만 코드 보이싱이라든지 화성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했던 곡이에요. 반복이 없거든요, 그 곡은.

‘그 가을 숲속’은 음악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완전히 제가 만든 기타 튜닝으로 연주해본 곡이에요. 그래서 기타치는 분들이 들으면 ‘어떻게 쳤지?’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정상 튜닝에서 나올 수 없는 보이싱이거든요.

‘바다처럼 그렇게’는 저에게는 3집의 ‘국경의 밤’ 같은 곡이었어요. 오랜만에 국경의 밤을 듣는데 이상하게 굉장히 서사적으로 들리더라고요. 가사가 너무 많은 거예요. ‘국경의 밤’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바다처럼 그렇게’는 저 자신에 대한 서사를 담은 곡이에요. 초등학교 2~3학년 때 바닷가 근처에 살다가 여러 군데를 떠돌고 시간이 훌쩍 지나서는 결국 다시 바다 옆으로 온 이야기죠. (기자 : 그래서 다른 곡에 비해 조금 더 길군요.) 네, 더 길죠. 총 6분 12초 쯤.

“농사일, 음악에 비유한다면 인더스트리얼 록 혹은 EDM에 가깝다”

Q 농사일을 인더스트리얼 록 혹은 EDM 장르에 비유한 부분이 흥미롭더라고요. 예상 밖의 음악 장르라 인상적이었어요. 오히려 정적인 음악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어우, 노노노노노. (웃음) 절대요, 절대. 책 보시면 농사 사진이 거의 없어요. 밭농사 사진 한 장 들어갔나?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요. 과수원 농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사진을 남겨야 해서 아내에게 겨우 카메라를 주고 몇 장 찍었던 건데,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쟁이에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흔히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밀짚 모자 쓰고 여유롭게 목에 수건 하나 걸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 많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Q ‘나에게 앨범과 노래란 다큐멘터리다’라고 하신 부분이 있어요. 앨범의 연대기가 곧 자신의 과거라면서요. 시간이 흐른 뒤에 8집 앨범을 떠올릴 때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일단 시간이 흐르면 음악은 거의 안 듣게 될 거예요. 성에 안 차거든요. 지금은 8집 음반에 꽤 만족하는 편이지만, 이전의 음반들은 잘 안 듣거든요.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이 되면 안 들을 거예요. 듣기 싫어지는 부분이 생기고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생겨요. 책은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은데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에세이’에 대한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필류의 글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안 보고 싶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때가 탈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자 : 이전 음악들을 듣지 않는 이유와 같나요?) 조금 다른 결에서는 그렇죠. 음악은 테크니컬한 면에서 ‘내가 왜 이렇게 노래를 지지리도 못 했지. 녹음을 왜 저 따위로 했을까. 연주는 왜 저 모양이지?’ 이런 생각들. 이번에 2집 음반 ‘오 사랑’을 리마스터링 했는데 못 듣겠더라고요. 노래를 진짜 못 했더라고요. (웃음) 지금도 뭐 거기서 거기지만요. 책은 기록적인 의미로는 분명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아요.

Q 2년 후에는 또 어떤 음반이 완성될까요?

막막해요. 7집 끝나고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늘 ‘나 뭐하지’ 생각했어요. 농장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죠. 해거리가 심하니까 내년에 꽃이 많이 달리면 꽃도 많이 따주고 가지도 치고 하면서 힘을 분산시켜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음악을 계속 찾아 듣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으면서 시간을 또 보내야겠죠. 그렇게 다음해가 되면 작업물을 모아서 다음 음반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할 것 같아요. (기자 : 기대되네요, 어떤 음악이 나올지.) 그래요? 전 왜 이렇게 막막하죠? (웃음)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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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루시드폴

1975년 3월 서울 출생. 투명한 가사로 무한한 아름다움과 소담한 위로를 전하는 음악인이자 스위스화학회 고분자과학부문 최우수논문발표상을 받고 스위스로잔공대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화학자, 지금은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제주에서 감귤 나무를 돌보는 농부.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의 첫 앨범 [Drifting]으로 데뷔했고, 2001년 솔로 1집 [Lucid Fall]을 시작으로 [오, 사랑], [국경의 밤], [레미제라블], [아름다운 날들], [꽃은 말이 없다], [누군가를 위한,]까지 일곱 장의 정규 앨범과 가사 모음집 [물고기 마음], 소설집 [무국적 요리], 마종기 시인과 함께 지은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번역서 [부다페스트] 등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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