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1.10 조회수 | 4,543

이병률 시인 “나의 빈 괄호, 사랑으로 전부 채우고 싶어”

 

이병률. 그를 생각하면 고욤나무 한 그루가 떠오른다. 그의 첫 시집에는 비로 인해 쓰러진 고욤나무에 관한 시 한 편이 담겨있다. 시인은 그 나무가 비를 반가워하다 발을 접질렸고, 어느 쪽으로 넘어질 것인가를 고민하다 풀썩 쓰러진 것이라 말한다. 밑둥치에서 놀던 벌레들이 달아나고 넘어지는 큰 나무를 받아내던 이웃 나무의 풍경과 함께 쓰러진 나무를 어루만져주고 싶어 하는 마음씨까지 섬세한 무늬로 남아있다.

 

때때로 작가들은 그렇다. 책을 내고 인터뷰하는 자리에서조차 다소 어색해하거나 쑥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병률 시인은 잘 매만진 머리에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 사진 촬영에서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짚어 말할 줄 아는, 그야말로 베테랑이었다. “책 나와서 하는 인터뷰는 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니까요.”라고 말하는 그 앞에서 과연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해야 할까. 다행히 이럴 땐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방법이 내게도 한두 가지쯤은 있었다.

 

살짝 마른듯한 얼굴과 가벼운 몸놀림. 그에게 살이 좀 빠졌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오래 타던 차를 없애고 걷기를 시작했단다. 제주에 시골집을 얻어 글을 쓰고 있는데 차가 필요 없어졌다는 것. 주로 밭을 정리하거나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밥도 집에서 혼자 꾸무럭대면서 아무거나 먹는 걸 좋아한다는 그였다. 그렇게 차를 없앤 것은 삶의 어느 한 부분에서 익숙한 하나를 훅 빼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그는 차를 없애고 많이 걷다 보니 인생이 바뀌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전에 없던 쌍꺼풀도 갑자기 생겼을 정도라니. 사실 25년 운전경력에 배추를 사러 가까운 수퍼마켓을 가더라도 운전을 했던 그였다.

 

 

'한라산 소주'같은 이번 시집…도수는 높지만 좋은 물로 만들어 숙취는 덜해

 

이병률 시인은 새롭게 펴낸 자신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7년)에 대해 입을 떼면서 문득 프랑스의 어느 빵집 이야기를 꺼냈다. 웬 엉뚱한 이야기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더니 천연발효종에 관한 것이었다. 오래된 프랑스의 빵집에서는 100여 년 전 묵은 반죽을 조금씩 더 해 빵을 굽는데 자신 역시 첫 시집에서 시작된 작은 반죽을 이번의 시집까지 계속해서 굴려왔다는 것.

 

“이번 시집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많이 아팠구나, 좋은데도 불구하고 다 취하지 못한 채로 멀리도 갔구나, 많이 그리워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게 있어 인연은 순간순간의 조각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걸 건드리면 지금처럼 살 수 없으니까 좋고 아름답고 애틋하지만 그냥 놔두는 거죠. 그런 채로 계속 다른 곳을 보는 척 멀리 갔다 오는 제 삶이 잘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첫 시집을 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허공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는 만큼의 삶을 사는 것 같고요. “

 

그는 자신의 이번 시집을 한라산 소주에 비유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술보다는 도수가 높지만 좋은 물로 만들어 숙취가 덜하다는 것이 이유. 바다에서 나누는 마음이 더해진 술이라 자신의 시집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술 얘기를 하고 있자니 이번 시집에 담긴 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국을 끓여야겠다 싶을 때 국을 끓인다 / 국으로 삶을 조금 적셔놓아야겠다 싶을 때도 / 국속에 첨벙 하고 빠뜨릴 것이 있을 때도 / 살아야겠을 때 국을 끓인다”(‘11월의 마지막에는’)라고 말하는 그의 시를 보면서 맵고 칼칼한 오징어 국이 생각났다. 이병률 시인은 사람이 허기를 가장 빨리 면할 수 있는 게 국이라면서 평소에 밥 없이 국만으로도 한 끼 식사를 때울 정도로 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평소 된장국에서부터 북엇국, 콩나물국, 미역국에 이어 청국장까지 웬만한 국은 잘 끓인다고. 

 

“저는 사람들과 있을 때 국을 끓여주는 사람이에요. ‘추우니까 먼저 먹으라’며 숟가락 놓고 떠주기까지 하는 사람이죠. 국만 있어도 그냥 좋아요. 옛날의 시골은 겨울이 길었거든요. 그때 국을 끓여서 따뜻하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어요. 예전에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자고 갔던 경우가 많아서 아침에 따뜻한 밥과 국을 끓여 먹이고 그랬어요. 이번 시집에도 보면 김소연 시인이 발문에 저와 밥 먹는 이야기를 생중계해놓고 사생활 폭로를 해놨잖아요. (웃음) 김소연 시인이 저라는 사람의 결에 대해서 잘 해부를 해준 거죠. 11월에 태어나서 그런지 쓸쓸한 운명을 타고난 느낌이 들어요. 11월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허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게 있어 국을 끓인다는 건 다른 사람에 대한 기다림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일인 것 같아요.”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산 못된 사람…하지만 계속해서 양보 않을 것”

 

이병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저편에 또 다른 나 하나가 생성된다는 / 잔인한 가정을 믿기로 한다면 /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무언가라도 되어야겠는데”(‘사람의 재료’)라는 자조 섞인 말을 뱉으며 “지금은 다만 내 마음의 1층과 2층을 더디게 터서 / 언제쯤 나는 귀한 사람이 되려는지 지켜보자”(‘지구서랍’)고 말한다. 여기에 “우리는 저마다 /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사람이 온다>)라는 기대감도 덧붙인다.

 

그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자신이 밀고 나가려는 세계가 붙어 있다며 그 사이에서 생긴 텅 빈 괄호를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랑 얘기를 쓰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며 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제일 많이 쓰시는 게 사랑 얘기 아녜요?”라고 짓궂게 되묻자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사실 그대로 하실 수 있죠?”라며 웃음 섞인 답을 하는 그였다.

 

“저는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몸에 밴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대해 많이 쓰기는 하지만 이제는 안 써도 되지 않나, 하는 마음도 있어요. 제가 사랑 시만 60편을 써서 시집을 내면 아마도 많은 분이 거북해하실걸요? (웃음)

 

저는 지금까지 못되게 살았어요.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으니 얼마나 못된 사람이에요. 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그러한 것들을 줄 세워 놓고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 무릎의 힘이 없다고 그런 걸 다 놓아버리면 저답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대단한 욕심이 있는 건 아녜요. 시인은 거대하게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냥 비루하게 자기 세계를 근근이 연명하면서 쓰는 거죠. 오히려 시인이 쓴 것들을 독자분들이 가슴에 넣었다 빼면서 크게 봐주시니까 더 아름다워지는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전 독자분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의 책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독자 분들의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보면 좋은 문장이라 여겨질 때가 많거든요.“

 

그는 대화 내내 자주 웃었다. 차분한 목소리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남몰래 하는 사소한 일에 대해 궁금해하니 그는 항공권을 폭풍검색 하는 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하루에도 평균 5~6번은 검색을 해본다고. 최근에 검색한 곳을 물으니 이란, 블라디보스토크, 사할린, 삿포로 등이란다. 이제 곧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를 취재하러 떠난다고 했다. 그곳에서 취재를 마치고 아이슬란드로 넘어가 연말을 보내는 것이 계획이라고.

 

 

이병률을 시인으로 만든 파리의 거리에서 시를 사고 파는 풍경.

 

이병률 시인에게 데뷔 후 20년의 세월에 관해 묻자 그는 얼마 전 시 전문 잡지 ‘발견’에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쓴 원고가 있다며 메일 하나를 보내주었다. 글의 제목은 ‘○○ 시인들의 사회’. 제목에 있는 ‘○○’은 상상으로 채우라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전해주었다. 다음은 원고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길에서 자신이 쓴 시를 프린트해서 파는 시인을 보았다. 시인은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자기 시를 소개하면서 맘에 든다면 자기 시를 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지나치기도 했지만, 그의 옆에 서서 시 이야기와 시 낭송을 듣기도 했고 또 돈을 내고 제본된 시집 한 권 혹은 낱장의 시를 사가기도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 파리의 거리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나는 그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시인이 되었다. 그 풍경은 시인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시를 쓰던 당시에도 그리고 그 과정을 어렵사리 통과하고 나서도 강렬하게 나의 뇌리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서점에서 산 시집만 보고 살던 나였지만 아무려나 그 직거래는 아름다웠다. 파리이기에 가능한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길에서 시를 팔다니. 거리에서 시를 사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도 그 풍경은 아름다울 수 있다니. (중략) 그 풍경이 펼쳐보이는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운명 같기도 하였고, (아주 나중에는 어쩌면 그 풍경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시의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병률 시인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 놀란 사실 하나가 있었다. 그의 소개에는 늘 다양한 숫자들이 따라붙는다는 것. 몇 년간 몇 권의 책을 냈으며 그 책들이 몇만 권이 팔렸고 몇 쇄를 찍었으며 심지어 몇 호의 책인지까지도! 그 숫자들은 진열장에 가지런히 나열되듯 한데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많은 수의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일 텐데, 그런데도 하나같이 그를 숫자로 이야기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을 때면 풀이든 꽃이든 손에 꼭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하는 사람. 글이 한 줄도 안 쓰여져 힘들고 재미없는 여름에는 무조건 놀아야 하는 사람. 지금도 계속해서 시가 마음에 고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고 말하는 사람. 내 찻잔에 담긴 과일 청을 수저로 꾹꾹 눌러 주던 사람. (이런 걸 쓰면 그는 또 싫어할 테지만) 어쩔 수 없이, 이병률 시인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장소협찬 : 십삼월에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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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이병률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좋은 사람들」 「그날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산문집으로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2006)을 수상했으며, 현재 ‘시힘’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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