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6.05.04 조회수 | 8,858

만화가 김보통 “'D.P'가 옛날 군대 다룬 만화? 현실회피일 뿐”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국어사전을 뒤져 찾은 ’보통’의 뜻이다. 통상 만화가들의 예명은 눈에 띌 만큼 튀거나, 작가의 개성을 드러나게 짓는 경우가 많지만 만화가 김보통은 개성 대신 백지장처럼 하얀 ’보통’이란 이름을 택했다. 하지만 ’보통’이 더는 ’보통’이 아니게 된, 즉 상식이 일상화되지 않은 세상에서 오히려 그 이름은 가장 강력한 개성이 되어주었다.



"D.P 시절…나에겐 ’개의 날’이었다"



한겨레신문과 만화전문사이트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D.P>의 단행본 출간을 기념해 그의 일산 작업실을 찾았다. 평소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김보통 작가는 인터뷰 당일에도 ’고독이’ 캐릭터 탈을 머리에 쓰고 사진 촬영에 임했다.



2013년 그의 데뷔작 웹툰인 <아만자>가 이제껏 잘 드러나지 않았던 젊은 암 환자들의 애환을 드러냈다면, 탈영병 잡는 헌병인 D.P를 소재로 한 만화 <D.P>는 군대 내 일상화되고 세습되는 폭력을 폭로했다. 대한민국 국군 900명당 1명꼴로 매달 60명의 탈영병이 발생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탈영사건은 해당 병사가 사회성이 부족했다거나 정신적 이상이 있다는 식의 개인 문제로 다뤄져 왔다. 반면, 작가 김보통은 그 원인을 군대 문화의 폭력적 속성에서 찾았다.



만화 <D.P> 속 탈영병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선임의 구타 및 폭행, 언어폭력, 따돌림, 선임의 성희롱 등이 극단의 공포로 그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구제할 수 없고, S.O.S를 외쳐도 들어주지 않는다. 군대라는 폐쇄적 조직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탈영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탈영병들만 잡으러 다니는 것이 바로 D.P다. 작가 본인도 군대 시절 D.P의 경험이 있다. <D.P>에서 활약하는 유능한 D.P 안준호 상병에 만화가 김보통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D.P가 되어 사복을 착용하고, 외부 출입도 할 수 있으니 일견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당시를 만화에 붙은 부제처럼 ’개의 날’이었다고 표현했다.



"D.P. 생활하면서 ’나는 군견’이라고 생각했어요. 수배 명령이 떨어지면 신상기록부, 싸이월드 주소, 친구들 이메일, 수양록(군에서 기록하는 일기)같은 기록을 다 주고 잡아오라고 하거든요. 그게 사냥개들에게 목표물의 냄새 맡게 하고 잡아오라는 것과 똑같잖아요. 어느 날 자료를 받고 사진을 보면서 ’탈영병은 토끼고 나는 군견, 사냥개’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걸 이겨보려고 ’나는 양치기 개’라고 좋게 순화를 하려 하기도 했어요. 누군가는 군 시절을 떠올리면 훈련한 것만 기억날 것이고, 누군가는 음식한 것만 기억날 텐데, 저는 군 시절 추적한 것밖에 없었기에 개의 나날들이었어요. 개 취급을 받는 군인으로서, 탈영병을 쫓는 사냥개로서, 나라의 명령을 받고 친구가 될 수도 있는 내 또래의 누군가를 쫓아야 하는 군견으로서."



만화는 실제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했지만 대부분 허구의 사건으로 재구성하여 그렸다. 혹시라도 실제 군대에서 유사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에게 2차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의 만화를 보고 군대에서 가해자였던, 피해자였던, 혹은 방관자였던 군필 남성들은 자신의 고백을 전하기도 했다.



"군대시절 가해자였던 분 중 만화 속 가해자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서 자기가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과 마주하게 되었고 반성하고 후회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온 분도 있어요. 헌병대 수사과 수사병이었던 분은 자신이 담당했던 자살 사건을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얘길 하기도 하셨죠. 그때의 기억이 계속 죄의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소리소문 없이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얘기를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요. 보통의 군 경험을 한 어떤 남자 분은 침묵한 경험에 대해 자신이 비겁했고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얘길 하기도 하셨고요."





"’요즘 군대 다르다’라고 말하는 건 외면하고 싶어서 아닌가요?"



만화를 연재하던 중 ’요즘 군대는 그렇지 않다. 누가 그런 구닥다리 군대 얘길 하느냐?’라는 반응도 있었다고. 이에 너무 옛날 얘기를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할 무렵, 서울 내곡동 예비군 총기 사고가 터졌단다. 당시 그가 그린 만화 내용은 예비군 사격장에 가서 쏴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간부를 미워하는 한 제대 군인의 이야기였다.



"’아다리’가 맞은 게 기쁘다기보다는 더 무서웠어요. 군대는 오히려 변하지 않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요. 결국, 사람들이 ’옛날 군대’라고 얘기하는 건 자기가 외면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없다’고 얘기하는 거지, 결과적으로 군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크게 변함이 없고, 가혹행위도 큰 변동이 없는 거잖아요. 차라리 사람들이 얘기하듯 ’구닥다리 옛날 얘기’라고 받아들여지면 기뻤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죠."



군대에서의 경험은 비단 그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20대 초 중반 시절에 경험한 최초의 수직적, 절대적 상명하복의 소위 ’까라면 까라’는 식의 조직문화는 그 이후 소속할 직장이나 모임 등에서의 사회 경험으로까지 확산된다.



"그게 다 군대에서 배운 것이거든요. 여성분은 ’뭐, 이따위지?’하고 생각하고 넘어갈 테지만,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달라요. 이건 군대에서 겪었던 일이고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는 촉이 2년에 걸쳐 땀과 피가 튀며 체득한 경험 속에서 딱 와요. 어디에 줄을 서야 하고,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군대를 제대하고 조직의 생리를 체득한 사람들이 나와서 만들어 가는 게 회사라고 보거든요. (군대 경험이) 대단히 큰 악영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봐요. 대학교 고학번들만 해도 어린 친구들에게 ’군대엘 안 다녀와서 개념이 없다’라는 얘길 일상적으로 하잖아요. 그것부터가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D.P>뿐만 아니라 <아만자> 등의 그의 여타 작품들은 주로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하지만 잊혀진 권리들을 상기시킨다.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전에는 보통의 회사원으로 살았다는 그는 왜 이제껏 어둡게 가려져 있던 약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인지가 궁금했다.



"<아만자>도 그렇고 <D.P>도 그렇고 콘티라든가 아무 준비도 없이 그렸어요. 일단 그리라고 해서 그리기 시작한 건데, 그리다 보니 젊은 환자들에 대한 얘기가 되고, 군대라는 조직에서 희생당하고 다친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제가 명확하게 의식하지는 않았어도 마음속에 걸렸던 게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어시스턴트가 대우받는 세상이 온다면 욕먹어도 상관없다."



최근에는 김보통 작업실 어시스턴트 모집 공고에서 제시한 처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근무시간 5시간/정규직 어시스턴트 월급 100만원’이라는 조건을 내건 김보통의 어시스턴트 모집 공고에 SNS 사용자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임금 수준이나 근무 강도로 보면 당연한 대접이지만, 실제 만화 작업장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터져 나온 반응이었다. 일각에서는 왜 전체 만화인이 어시스턴트들을 부당하게 대접하는 것처럼 욕보이느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제가 욕 먹어서 화제가 돼서 ’누구는 5시간씩 일하고 100만 원을 준대’라는 얘기가 돌면 결과적으로 득을 보는 건 어시님들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력 되는 사람들은 최저 수준 김보통 보다는 잘해주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다못해 교황님도 욕을 먹는 시대잖아요. 교황님 트위터 계정에 가보면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라는 트윗 아래 욕 댓글이 나오거든요. 어떤 일을 하건 욕은 먹을 수 있는 거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니까요. 그래도 결과적으로 어시님들이 대접을 받는 사회로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욕먹어도 상관없어요. 최근에 어시를 한 명 더 고용해서, 다음 주부터 어시 두 분과 같이 일하게 돼요. 망하려고 작정을 한 거죠."



이번 어시스턴트 고용을 비롯해 작가가 그의 SNS 계정에 올리는 만화가로서 헤쳐나가야 하는 불안한 현실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이 올라온다. 이에 많은 이들은 공감하고 용기를 얻는다. 그의 이름처럼 ’특별히 뛰어나거나 열등하지 않기에’ 고민하고 현실에 부대끼고 흔들리는 모든 보통 사람들의 시점에서 이야기하기에 더욱 많은 공감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김보통은 ’보통’의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를 시도한다. 만화를 그리고 싶지만, 여건이 어려운 후배들에게 장비를 제공한다거나, 레진 코믹스에 연재한 ’내 멋대로 고민상담’(현재 휴재 중)의 내담자 중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 한해 한 대학 병원과 연계해 상담치료를 제공하는 기회도 마련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화가가 되고 운이 좋아서 먹고 살 수 있는 건 선의를 가지고 제게 기회를 주고 도움 준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단칸방 작업실이래도 내가 잘나서 얻은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든 다시 다른 사람에게 기회로든 물품으로든 돈으로든 돌려줘서 그것들이 회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판을 벌여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그 사람은 저에게 받은 도움을 다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벌이는 중이에요. 앞으로도 수임의 30% 정도는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가 벌이는 크고 작은 일들이 결실을 맺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뜻을 함께한다면 조금씩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거대 담론이 사라진 세상, 어쩌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희망은 거창한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보통’과 상식의 회복일지 모른다. 김보통이 꾸는 꿈을 들으며 일산의 단칸방 작업실에서의 인터뷰는 마무리 지어졌다. (김보통과의 인터뷰가 있던 날은 공교롭게도 알랭 드 보통과의 인터뷰가 있던 날이었다.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작가는 알랭 드 보통에게도 한마디를 전했다.)



"알랭 드 보통 씨에게는 왠지 (이름을) 표절한 느낌이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웃음) 언젠가는 저도 앞으로 열심히 해서 ’내가 한국의 보통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급이 된다면 같이 인터뷰할 날이 왔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꾸는 꿈은 언젠간 제 만화가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 출품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허황된 꿈이라도 꿈은 큰 게 좋으니까요. 또 한 가지는 <D.P>는 기본적으로 출판을 기본으로 한 만화이기 때문에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웹으로 보는 것보다는 출판된 책으로 보는 게 고려한 연출을 생각해서도 훨씬 나을 것이고, 그래야 제가 어시님 한 분이라도 더 고용하고 월급도 올려드릴 수 있으니까요. 도와주세요."



※ 김보통 만화가가 북DB와 인터뷰 촬영 때를 소재로 그린 만화.(출처 : 김보통 페이스북)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토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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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북DB 기자)

1983년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도움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kiwi@interpark.com

작가소개

김보통

만화가 수필가 라디오 게스트 [아만자](전5권) [DP 개의 날](전4권)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살아, 눈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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