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6.01.22 조회수 | 10,830

'쓴소리 경찰서장' 장신중, 칼 갈고 쏟아낸 실명 비판



순경으로 시작해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까지 올랐던 한 경찰서장이 드러낸 ’경찰의 민낯’. 장신중 전 양구경찰서장이 쓴 <경찰의 민낯>은 지난해 12월 20일 출간된 뒤 사흘 만에 3쇄에 들어가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경찰의 이름을 빌렸을 뿐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사회 곳곳의 민낯에 대한 부끄러움과 변화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전·현직 경찰 수뇌부에 대한 실명 공개는 물론 거침없는 비판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원고가 반려되고, 결국은 내용을 일부 수정·완화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세상에 나온 책에 대해 장신중 전 서장은 ’50%의 민낯’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어렴풋이 짐작만 했거나 주위에서 풍문으로 들었던 대한민국 경찰 조직의 비리와 문제점이 그 조직 안에 있던 당사자에 의해 낱낱이 밝혀질 때,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현직 시절 사이버경찰청에 올린 내부 비판 게시글만 해도 1000여 건에 달해 ’쓴소리 서장’으로 유명했던 장신중 전 서장. 제복을 벗은 이제는 고단했던 투사의 삶을 멈출 만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경찰의 민낯> 같은 문제적 책을 쓰고 페이스북에 경찰인권센터를 개설하는 등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Q 출간되자마자 반응이 뜨거운데요. 책의 내용이 너무 사실적이라 출판 자체가 어려움에 직면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원고에는 ’조직을 배신한 비겁한 청장’, ’출세를 위해 정권에 야합한 정치경찰’, ’인권탄압의 원흉’, ’출세를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무능한’ 등 자극적인 내용과 표현이 상당히 많았고, 거론된 사람들의 실명을 모두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몇몇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하기도 했고,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실명과 내용, 표현을 대폭 수정하면 출판을 검토하겠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다가 원고 수정 없이 출판이 가능하다는 곳과 계약을 했지만, 교정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부 표현과 내용, 실명을 익명과 이니셜로 수정한 후 출판을 하게 된 겁니다. 저로서는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하더라도 경찰 현장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기록한다는 차원에서 원문 그대로 출판을 하려던 게 당초의 생각이었거든요.



Q 책을 읽어보면 오랫동안 ’칼을 갈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책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퇴임한 후 경찰이 구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저와 함께 개혁을 추진했던 옛 동료들로부터, 제가 이루어놓은 일련의 개혁 작업들이 모두 무산되고 있고 권위주의적 문화가 부활하고 있다는 전언과 탄식을 전해 듣게 된 것이 책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책으로 잘못된 행태를 기록하면 미래의 경계가 될 것이고, 시대착오적 문화를 드러내는 순간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Q 31년 동안 일해온 조직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곰팡이를 없애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햇빛 아래 드러내는 것입니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비판과 제 살 깎아먹기라는 비난이 두려워 치부를 감춘다면 변화와 발전은 요원합니다. 제 책을 계기로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화 형성을 위해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조직의 민낯을 드러내는 책들이 발간되면 좋겠습니다.



"명예훼손 소송 각오... 실명 안 쓰면 잘못된 관행 반복 가능성 커"



Q 제목이 ‘경찰의 민낯’입니다. 이 책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민낯을 드러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경찰 조직의 시대착오적 문화와 관행, 경찰 수뇌부의 비열한 행태에 관해서는 적나라하게 폭로한 반면, 국민의 관점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경찰의 업무 행태에 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드러낸 민낯은 50%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전·현직 경찰청장의 실명은 물론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까지 나오더라고요. 노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의 다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실명을 드러내는 데 부담은 없었는지요?

실명을 사용해서 경고하지 않으면 잘못된 관행이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책에 거론된 사람들 모두 저와 관계가 있는 분들이지만 개인적 정리에 끌려 이런 부분을 간과한다면 책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친분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과거를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경계한다는 더 큰 목적이 있었기에 부담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Q 뉴스를 보니 경찰공제회 ’퇴직간부 품위유지비’ 문제가 이 책을 계기로 10년 만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더라고요, 이 항목은 2005년에 이미 없어진 것으로 아는데 지금 논란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은밀하게 빼돌린 돈을 은행에 예치시켜 놓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지급해오던 것을 제가 발견해서 폐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해당사자인 경찰관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책을 통해 일선 경찰관들이 한 푼 한 푼 모은 돈을 경찰 수뇌부가 빼돌린 후 고위 간부 출신 퇴직자들의 용돈이나 마찬가지로 사용해온 부도덕한 행태를 알게 돼 논란이 되는 것입니다.





Q 강릉경찰서장 재직 시절 ’경포해변 음주 금지’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관광지 음주 금지 정책이 경찰이 앞장서 추진할 사안이 아니라며 정치계 진출을 위한 행보가 아니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경포해변 음주 금지가 아니라 경포 해변 음주 ’규제’입니다. 백사장 내에 술병을 들고 들어가거나 고기 굽는 도구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제한 겁니다. 음주 규제를 의도적으로 흠집 내고 싶어하는 이해당사자들이 음주 규제를 음주 금지라고 왜곡한 거구요.

매년 수많은 사람이 유리 조각에 발을 베여 응급실로 실려 가는 상황인데도 경찰이 추진할 사안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정치권에 진출할 생각이었다면 경포지역 주민의 환심을 살 정책을 펴는 것이 정상이지 원성을 살 정책을 추진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 다시 강릉경찰서장을 한다 해도 경포해변 백사장에 술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음주 규제는 강력하게 추진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정치에 대한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Q 현직 시절 사이버경찰청에 올린 내부 비판 게시글만 1000건에 달해서 별명이 ’쓴소리 서장’이셨다고요. 이렇게 ‘투사’가 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책에서 밝힌 것처럼 경찰 입문 시절부터 권위주의가 판을 치는 경찰 문화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연히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많아져 불평불만분자로 낙인이 찍혔죠. 그런데 이 불평불만을 많은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인터넷이죠. 그동안 불평불만으로 치부되던 문제들을 글로 써서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더니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나왔습니다.

이후 경찰 내부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 경찰 지휘부의 권위주의적이고 비겁한 행태들을 지적했고, 많은 분들이 저의 글을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탄압을 많이 받았고 제복을 벗을 위기도 몇 번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니 경찰 지휘부도 더 이상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경찰개혁을 염원하는 현장 경찰관들의 열렬한 지지가 강력한 보호막이 돼 가능했던 일입니다.



"집회·시위 방해하는 경찰... 경찰관서장 임명권 정부에 있기 때문"



Q ‘투사 경찰관’이기 때문에 시련도 많았어요. 2005년에 수사 중인 피의자를 데려가 유치장에 입감하라는 강릉검찰지청의 지시에 불응해 징역 4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지요. 당시 불붙고 있던 검·경 수사권 논란과 맞물려 파장을 낳았고요, 현재 검.경 수사권 문제는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미흡하지만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경찰관이 수사의 주체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Q 경찰의 수사를 검찰이 지휘하도록 한 것은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라고 강하게 비판하셨는데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현재의 수사제도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효율적으로 식민통치 하기 위해 도입한 식민 잔재입니다. 어떤 독재국가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인권침해적 제도로서 수사와 기소를 한 기관에 전담시켜 독립운동가들을 손쉽게 처벌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입니다. 지금도 지구상에 기소와 수사, 형의 집행을 한 기관에 맡기는 나라는 없습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형식적 법치일 뿐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볼 때는 제도 자체가 인권유린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경찰 수사관 개개인이 상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관서장이 수사에 개입하거나 지시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국 같은 경우도 경찰관서장들은 직무에 대해서만 감독을 할 뿐 수사업무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Q 현재 경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집권형 독임제 경찰청장 체제라고 비판하면서 경찰관서장을 선출직으로 바꾸고 자치경찰제 도입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관서장 임명권을 중앙정부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찰 지휘부는 지역 주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이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군사독재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합니다.

가령 정부 정책을 홍보하거나, 권력자가 불편해 하는 집회와 시위를 방해하거나 강경 대응으로 무산시키는 행태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입니다. 현 정권이 4대악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치안행정을 종합적으로 펼쳐야 할 경찰이 모든 것을 제쳐놓고 4대악 홍보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정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경찰의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경찰관서장을 직접 선출하는 자치경찰제가 필수적 요소입니다.



Q 국민의 경찰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우선 요건은 ’경찰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어요.

경찰관의 노동자성 인정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공과 사를 막론하고 어떤 조직이든 견제와 균형이 필수적입니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직은 독선과 독재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 내부에 아직도 식민지와 군사독재 시절의 권위주의 관행이 잔존해 있는 것은 경찰 지휘부를 견제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현장 경찰관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근무여건 개선은 물론, OECD 국가 수준의 후생복지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더 안전한 환경, 더 좋은 치안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Q 현재 페이스북에서 운영 중인 ‘경찰인권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며칠 전 강신명 경찰청장이 음주운전으로 두 번의 사고를 내서 해임까지 당했던 경찰관을 경찰서장급인 총경으로 몰래 승진시킨 일이 들통 나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부적절함을 넘어 인사부패일 가능성이 높은 대목입니다. 경찰인권센터는 경찰 내부의 권위적 문화를 개혁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현장 경찰관들이 경찰 지휘부로부터 부적절한 처우와 인권침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한편, 경찰 수뇌부의 부패행위를 적발, 고발해 경찰의 청렴도를 개선하는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사진 : 장신중 제공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장신중

경찰관으로 사는 동안 스스로를 "제복 입은 시민"이라고 불렀다. 모든 제도와 관행은 어떤 제도와 관행이 시민의 권리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직 내외의 불의와 싸우며 살았다. 불합리한 내부 관행에 정면으로 맞섰고, 시대착오적 검찰 제도를 온 몸으로 거부했다. 경찰 수뇌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고, 검찰의 기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현장 경찰관의 열악한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투쟁했고, 후생복지 향상을 위한 충돌을 불사했다. 매 순간 직을 걸고 싸웠던 그는 경찰 수뇌부에게는 눈엣가시였지만 현장 경찰관에게는 한줄기 희망이었다. 퇴직 후에는 페이스북에 [경찰인권센터]를 개설, 권력의 경찰을 시민의 경찰로 변화시키기 위해 1만여 명의 회원과 함께 경찰 개혁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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