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07.10 조회수 | 14,122

판타지 공식을 ‘깨는’ 엄친아 공대생 곽재식의 이중생활




‘공대생 출신의 남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도수 높은 뿔테 안경 아래 높게 솟은 뾰족한 코, 베일 듯 날렵한 턱선과 앙다문 입술. 새침해 보이는 얼굴과 비쩍 마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날카로운 분위기, 예민한 성격과 시니컬한 말투. 그에 반해 내가 만났던 공대생 출신의 남자는 좀 많이 달랐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부드럽게 처진 눈, 치아가 보일 만큼 활짝 웃어 보이는 입술, 넉넉한 몸집에서 나오는 푸근한 인상과 여유 있는 분위기, 수더분한 말투와 재기 넘치는 유머러스함까지. 차가운 공대생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동네 오빠 혹은 옆집 아저씨를 마주한 것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공대생 출신의 곽재식 작가를 단순히 작가라고만 부르기에는 그 이력이 심상치 않다. 그는 부산외고를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2년 6개월 만에 졸업한 그야말로 수재다. 이러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떨구어지는, 그는 말로만 듣던 ‘엄친아’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연구실에만 갇혀있을 것 같던 그가 인터넷에 <달과 육백만 달러>라는 단편을 꺼내놓으며 기량을 뽐내기 시작한 것이 지난 2005년의 일이다. 그의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 맥주의 마음>이라는 작품은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각색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곽재식 작가는 데뷔 이래, 판타지 소설 분야의 총아로 떠오르며 많은 이들에게 ‘앙팡테리블’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나갔다.

사실 이런 그의 재능은 여느 평론가나 출판사로 대표되는 ‘문단’ 보다 수많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챘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그의 소설을 엮어 <곽재식 단편집>을 출간한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후 곽재식 작가는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모살기>와 장편소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역적전>을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의 소설은 판타지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역사, 과학, 로맨스,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곽재식 작가는 지난 5년 간 약 60편 가량의 소설을 집필했고, 그간의 소설과 작품집을 살펴보면 전업 작가라고 해도 손색없을 이력이다.

현재 그는 화학회사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며 ‘주경야필’에 매진하고 있다. “정말 진지하고 치열하게 직업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소설을 쓰시는 분들이 보시면 욕하실 지도 몰라요. (웃음) 사실 제게 있어 소설 쓰는 일은 최고의 취미생활이에요. 소설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거든요. 보통의 취미활동은 돈을 들여 시간을 없애는 것들이 많은데 소설을 쓰는 일은 굉장히 생산적이고 보람되는 일이거든요.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바람직한 소설가의 태도는 아니에요. (웃음) 저는 ‘작가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혹은 ‘작가로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의식이 없다 보니 쓰고 싶은 것 위주로 쓸 수 있었어요. 그게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고요. 만약 작가로서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면 분명히 포기했을 거예요.”

곽재식 작가는 최근 새로운 소설집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을 발표했다. 지난 5년 간 썼던 60여 편의 작품 중 8편을 선정해 엮은 책이다. 그는 책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걸 썼나’ 싶은 것도 있었고, ‘다시 봐도 정말 재미있다’ 싶은 것도 있었단다. 작품들을 추려내면서 뿌듯함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반성이 들었다고도 했다. “처음 글을 썼을 당시에는 제 기준에서 재미있는 것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반면 요즘에 와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렇게 쓰면 출판사에서 좋아하겠지’ ‘이렇게 끝내면 독자들이 신선하다고 생각하겠지’ ‘이렇게 쓰면 잘 팔리겠지’ 하고 사람들을 의식하고 쓰는 게 너무 많아졌거든요. 사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쓴다고 정말 잘 쓰게 되는 것도, 엄청 재미가 있는 것도,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웃음)”


그의 소설들은 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뇌를 조작해서 인격이 분리되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 이야기를 재회하는 연인의 로맨스로 다룬다거나(<그녀를 만나다>) 미래의 로봇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모들의 육아를 논하는(<로봇 반란 32년>) 식이다. 지극히 낯선 판타지의 소재를 갖고 음모론적 허구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곽재식 작가는 판타지 소설을 쓰면서도 ‘현실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공간이나 배경은 비현실적일지라 하더라도 그것을 겪는 사람들만큼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곽재식표 판타지 소설의 가장 큰 ‘맛’이기도 하다.

“한국 소설들은 대체로 진지하고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비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별로 없어요. 울적하고 암울한 분위기로 흐르다 누구 한 명이 죽거나 자살하면서 비극적으로 끝나는 소설이 많죠. 물론 그러한 작품들이 제 소설보다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때때로 밝은 것을 읽으면서 산뜻한 기분에 휩싸이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요? 시중에 나온 SF소설 역시 상상의 영역을 다루다 보니 너무 막연한 일을 다룬다던가 그야말로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문제를 다룰 때가 많죠. 현실과의 접점이 약하거나 사회비판적인 내용으로만 흘러가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제 소설은 상상 속의 일을 다루면서도 보통의 학생, 평범한 회사원들이 겪을법한 내용이다 보니 독자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의 팬층은 두텁다. 팬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곽재식 작가는 겸손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그는 수줍은 목소리로 전국에 100명가량의 골수팬이 있다고 귀띔했다. 내 글을 꾸준히 봐주고 열렬하게 호응해주는 사람이 100명이나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뿌듯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곽재식은 작가로서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팬들의 호평뿐만 아니라 악성 댓글과 같은 혹평에도 반갑다는 기색을 표했다. “욕을 먹으려 해도 인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웃음) 무관심 보다는 혹평이 낫다고 생각해요. 사실 좋은 게 있어서 좋다고 말해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죠. 반면 나쁜 것에 대해 굳이 시간을 써서 재미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일부러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행동이에요. 그래서 저는 혹평이나 악성 댓글도 반가운 징조로 생각해요. 사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악성 댓글을 바라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제 소설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어서 답답했던 시기였거든요. 잘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없다 보니 세상이 나의 소설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한 물 갔나 싶기도 했죠. 그때 악성 댓글이라도 나왔으면 정말 반가웠을 거예요. (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곽재식’이라는 이름은 판타지 문학 안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이다. 그에 대해 모르는 독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이나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많다.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 있어 곽재식 작가의 소설은 판타지 소설의 입문용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설은 장르 문학의 색이 약해 읽기에 거부감이 적다. 곽재식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일반적인 주류 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다리에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의 소설은 재미와 흥미 위주의 소설이면서도 틀에 박힌 내용은 아니다. 지겹고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도 아니다. 문제점을 고발하기 위해 무거운 내용만을 다룬다거나 처참하거나 슬프고 우울한 내용만을 다루지도 않는다. 결말은 대체로 해피엔딩이다.

그의 소설들이 독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재미 위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는 내용만 있고 세계가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이 내용 위주로만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는 문장의 정교함이 불가피한데 곽재식 작가는 그러한 문장의 역할을 곧잘 희생시키고 있는 듯 보였다. 쉼표가 난무하거나 설명하는 식의 문장은 대체로 경제적일 수 없다. 이러한 문장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있어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강박은 불필요한 묘사와 말장난으로 이어지고는 했는데 이러한 부분은 소설 전체와 당위성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넘어 삶의 깊이와 철학적 통찰 등을 엿볼 수 있는 정교한 구조의 소설을 내놓는다면 곽재식 작가는 탄탄한 기량을 갖춘 대형작가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바쁜 회사원의 일상과 작가로서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우선 그는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해놓는다고 했다. 2009년도에 어느 팬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수첩을 아이디어 노트로 쓰고 있다고 했다. 소재는 그야말로 도처에서 얻는 편인데 실제의 경험보다는 목격한 일이나 소문으로 들었던 일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경험한 일은 사심이 들어가거나 스스로에 대해 방어적이 돼서 못쓰겠다는 것이 곽재식 작가의 설명이었다. 그는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상상을 하거나 망한 영화나 실패한 연속극을 보면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괜찮은 이야깃거리를 뽑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설은 틈이 날 때면 그냥 아무 때나 써요. (웃음) 노트북을 항상 갖고 다니거든요. 약속이 있어 기다릴 때, 여행 혹은 출장을 갈 때 터미널이나 공항, 기차 안에서 쓸 때도 있고요. 평일에도 틈틈이 쓰는 편이에요.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났다든가, 점심을 먹고 시간이 조금 남았다든가 할 때요. 솔직히 다른 작가들에 비해 소설의 질에 대한 고민을 덜 하다 보니 부담 없이 틈틈이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많은 고민을 통해 문장이나 내용에 공을 들이는데 반해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웃음) 제 생각에 이 정도면 재미있고, 읽을 만하다 싶으면 그냥 써요. 쓰다가 이상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도 ‘다음에는 더 잘 쓸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가는 편이에요.”


곽재식 작가는 자신처럼 본업이 있으면서도 소설을 쓰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소설가라는 한 줄의 이력보다 간호사, 어부, 방앗간 주인 등의 이력을 가진 새로운 소설가들이 등장하길 바란다고 말이다. 그는 제2의 곽재식을 꿈꾸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의 말을 남겼다.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쓰셨으면 해요. 소설이라는 것이 쓰다가 제풀에 지쳐 재미가 없어지기도 하고, 시간이 없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두기도 하거든요. 공모전에서 상을 타겠다고 시도해봐도 자꾸 실패하다 보면 점점 의욕을 잃기도 하고요. 다만 그럴수록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써야 해요. ‘성공하는 작가가 되기 위한 10가지’ 혹은 ‘재미있는 소설을 쓰기 위한 20가지 조건’등에도 휘둘리지 말고요. 그래야 의지가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제 자신에게 하는 조언 같네요. (웃음)

더불어 아마추어로서, 취미로서 소설을 쓰더라도 꼭 끝맺음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의 규모를 줄여서라도 완결을 꼭 지어보세요. 그래야 흐지부지되지 않고 성취감도 생기거든요. 되돌아 봤을 때 얻는 것도 생기고요. 하다못해 자기 나름의 창작 방식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고요. 앞으로 몇 년은 더 써야 결말을 맺겠다는 식의 생각을 한다던가, 쓰다가 자꾸 때려 치우고 중간에 포기하면 용두사미의 꼴이 되기 쉽죠. 졸작으로 끝날지라도 어떻게든 모든 의지를 불어넣어서 꼭 끝맺음을 하도록 노력하세요!”

곽재식 작가의 소설에서는 현실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일들이 손쉽게 척척 이뤄진다. 어려울 것만 같은 일들이 단번에 성공하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상상 속의 장면이 완벽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감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 출구를 찾지 못할 때, 그의 판타지는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일상에 작은 균열과 흔들림을 주는 그의 판타지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이러한 이유에서 앞으로도 그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열렬히 응원하는 바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곽재식

2005년 환상문학웹진 거울 24호에 [달과 육백만 달러]를 게재한 이후 필진에 합류하여 활동 중이다. 이후 다양하고 색다른 소재를 중심으로 다루면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연애 이야기와 옛 문헌을 바탕으로 옛날이야기의 맛과 현대적 플롯을 조화시킨 역사물 양쪽을 오가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어떤 소재의 작품을 쓰더라도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를 잃지 않으며, 이야기 본연의 재미를 가장 잘 아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듀나의 영화낙서판'에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곽재식 단편집]을 출간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모살기]와 장편소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역적전]을 출간했고, 그 밖의 여러 공동 단편집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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