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소식

등록일 | 2012.02.21 조회수 | 35,356

고전소설, 전통을 벗고 로맨스를 입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알아보는 사랑, ‘잊어야 했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을 선보이며 시청률 40%를 눈 앞에 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외로운 군주인 이훤과 그런 훤의 곁에 있으나 숨어서 지켜야만 하는 달 연우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매회 마다 열풍을 일으키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해를 품은 달>의 인기요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조선이라는 사랑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첫 눈에 반했던 훤과 연우의 고전적이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애틋함을 증폭시키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해를 품은 달> 포스터 (출처: iMBC 홈페이지)

 

사극과 로맨스의 만남은 <성균관 스캔들>과 <공주의 남자>에 이어 연이은 히트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현 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고전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해를 품은 달>과 같이 우리나라 고전소설에서도 훤과 연우 못지않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들이 많다. 보통 남녀의 사랑이 담긴 고전소설이라 하면, <춘향전>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춘향전>외에도 ‘해품달’ 못지 않은 로맨스를 그린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는 판타지적 요소를 삽입해 현대물과 버금가는 러브 스토리를 담은 작품도 있고, 조선시대라는 배경답게 신분을 뛰어넘은 가슴 아픈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들도 존재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감정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작품을 ‘염정(艶情) 소설’이라 칭하였는데, ‘염정소설’은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며 근본적 문제 중 하나인 남녀의 애정을 소재로 한 것으로 대체적으로 만남 – 이별 – 재회의 서사적 과정을 담았다. 어려운 고어와 한자, 딱딱한 고전소설에서 벗어나 충실한 묘사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염정소설들. 변화하는 정세와 가치관을 사랑에 반영하며 다양한 재미와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담은 한국 고전소설들을 소개해본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
<이생규장전>

 

 

지난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 가난한 스턴트우먼 길라임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완벽남 김주원의 판타지한 사랑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주변의 장애를 딛고 이루어낸 마법 같은 예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속 <이생규장전>도 죽음을 초월하는 숭고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어렵게 사랑을 이루어낸 이생최랑은 행복을 누려보기도 전에 홍건적의 난으로 최랑이 죽게 되며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 그러나 이생의 극진한 그리움에 최랑이 환생하게 되며 이생과 최랑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초월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시크릿가든>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미해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죽음을 초월한 이상향 같은 영원한 사랑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또한 유교적인 세계 속에서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뒤엎고 솔직하고 대담한 주인공들의 적극적인 사랑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생규장전>에서는 ’이생’과 ’최랑’을 중심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간절한 의지와 신념이 가득 찬 기적적인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생규장전>은 ‘삶이란 기쁨과 슬픔의 엇갈림’이라는 의미를 곱씹게 하는 작품으로,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읽혀진다.

 


사랑은 스스로 선택한다
<숙영낭자전>


 

짝짓기 프로그램 <애정촌>을 보면 더 이상 부모 강요나 집안끼리의 정략결혼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으로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연해하고 결혼하는 21세기 애정관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자유로운 연애 사상을 소재로 한 <숙영낭자전>은 급변하는 조선 후기의 정세를 잘 반영한 소설로 선녀 숙영과 죄를 받고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으로 살고 있는 백선군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문의 명예나 출세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개인의 욕망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백선군은 효를 최우선으로 하는 유교사회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사랑하는 숙영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부부의 연을 맺는다. 


<숙영낭자전>은 숙영이 너무 보고 싶어 과거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백선군과 그런 백선군을 달래는 숙영의 알콩달콩 귀여운 사랑을 표현하며 해학과 웃음을 선사한다. 또 주인공의 사랑을 괴롭히는 다양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치 않는 강한 믿음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사랑에 대한 순수한 믿음의 교훈을 알려준다. 숙영낭자는 선군과 천생연분이었지만 정식으로 맞아들인 며느리가 아니었기에 마침내 외간남자와 통정했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한다. 이는 당시 조선시대 후기의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전소설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비극성은 역설적으로 봉건적 신분관계나 사회적 관습과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었던 당대인의 열정을 표방한다.

 

 

신분을 뛰어넘은 비극적 사랑
<운영전>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다양한 요인 중에서도 신분이나 빈부의 격차는 사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그 비극성이 배가 된다. <운영전>은 고전소설로서는 드물게 신분을 뛰어넘는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김진사의 운명적인 사랑은 밀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밀회마저도 들통이 나게 돼서 더 이상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이처럼 <운영전>은 중세적 이념과 신분적 제약에 걸려 사랑에 좌절하고 마는 주인공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세적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조선시대 한문소설의 백미로 평가 받고 있는 소설이다.


<운영전>은 대부분의 고대소설과 마찬가지로 작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운영과 김진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유영이 작자라고 주장하는 ‘유영 작자설’과, 유영은 단순히 소설 속의 가상인물일 뿐이라는 설이 있다. 읽기에 따라서 유영을 서술자 겸 작자로 볼 수도 있지만, 운영이 가공의 인물, 허구의 인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유영 또한 가공의 인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슬픈 운명의 운영과 김진사의 비극성이 더 큰 여운을 남기며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운영전>을 기억하게 한다. 그와 더불어 소설 속 운영과 김진사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연서나 운영 외에 등장하는 다양한 궁녀들의 한시들을 소설 중간에 자주 배치하여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애틋하고 아름다운 한시도 함께 감상 해 볼 수 있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진취적 여성의 사랑
<채봉감별곡>


 

사회에서 여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리더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약자로 인식되던 여성이 이제 사회의 주체로서 당당히 우뚝 서게 되었다. 이런 현대적 여성상을 일찍이 반영한 <채봉감별곡>은 여타 다른 고전소설이 수동적이고 남성에게 의지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에 반해 채봉이라는 한 여성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가며 삶과 사랑을 행복으로 일궈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우연히 보게 된 채봉에게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장필성과 혼인을 약속한 채봉. 하지만 아버지 김진사의 강요로 세도가인 허판서의 첩실로 시집을 가게 되자 채봉은 부모님의 뜻과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도망을 가서 기생이 되는 선택을 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해가는 채봉의 용감함과 슬기로움을 통해 한 여성의 진취적인 애정관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또 봉건 지배층으로 대표되는 허참판, 이런 허참판에 아첨하는 주변 인물들, 봉건 지배층에 대항하는 채봉과 장필성의 첨예한 갈등 구조로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주변의 방해와 위기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과감한 결단력과 당당함으로 사랑을 이루어가는 한 여성의 매력적인 사랑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채봉감별곡>은 부정적 현실과 대면하며 적극적으로 주체성을 발현하는 여성 인물을 역동적으로 그림으로써, 우리 애정소설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우리 소설 양식의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이끌며 근대소설이 발아할 통로를 여는 데 일조한, 고전소설에서 근대소설로 이행하는 소설 장르 변화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터파크도서 북& 7기 윤은지

좌절과 함께 시작했던 스무 살의 시간들을 책과 함께 꿋꿋이 이겨냈습니다.그 후 책은 저에게 삼시 세 끼 꼭 챙겨먹어야만 하는 밥처럼, 때로는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소중한 충전기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충전한 저의 일상들을 예술로 만들겠다는 일상예술가로서 앞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북에디터를 꿈꾸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문학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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