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7.14 조회수 | 5,843

이제 끝입니다(feat.소개하려고 했던 책들)

여러분은 지금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연재의 마지막회를 읽고 계십니다.

마지막 편에서 소개할 책은 연재가 시작할 때부터 몇 편 생각해두었어요.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2021. 7. 14 기준 절판)였습니다. 1970년대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극사실적인 리얼리즘 소설이면서 동시에 시간여행을 토대로 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물입니다. 정말 멋진 소설인데, 그래도 제대로 소개를 하려면 다시 한 번 시간을 내어 읽었어야 했지요. 다행히도 이 책은 얼마 전에 나온 마가렛 애트우드의 <나는 왜 SF를 쓰는가>에서 한 챕터를 들여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걸 읽으세요.

<나는 왜 SF를 쓰는가>도 언젠가 소개하려고 했던 책입니다. SF에 대한 마가렛 애트우드의 의견에 여려분이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여전히 최근 가장 중요한 영어 SF 작가 중 한 명이 된 필자의 경험과 의견을 담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고요. SF론 만큼이나 재미있는 건 SF 장르와 연관된 애트우드의 자신의 경험담입니다.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도 소개하려고 했던 책입니다. 며칠 전부터 새 번역을 읽기 시작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부천영화제 일정 때문에 끝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 오래 전에 이전 번역을 읽은 적이 있으니, 여러분이 그레이엄 그린 특유의 스타일에 익숙해진다면 (벌써 세월이 흘렀다고 그린의 20세기적 문체와 스토리텔링은 고풍스럽게 느껴집니다) 흥미진진한 독서가 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다와 핑키는 당시 영국 추리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탐정/악당 조합이에요. 최근 한국에서 그린의 번역은 아주 뜸했는데, 이를 시작으로 오락물로 분류된 그린의 다른 소설도 번역되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애나 러스의 <여성인간(The female man)>이 출판되기 전에 이 칼럼이 끝나다니 아쉽습니다. 이 1970년대 페미니스트의 분노에 찬 외침은 웃기지도 않는 손가락 검열의 시대에 더 와닿을 텐데요. 대신 마찬가지로 분노에 차 있고 그만큼 재미있는 논픽션인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을 읽으세요.

그리고 미루다가 결국 소개를 못한 몇몇 고전들이 있습니다.

장르물은 아니지만 (제가 이런 구분에 그렇게 신경을  쓴 적도 없긴 했지만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성 앙투안느의 유혹>은 19세기 환상문학의 최고봉입니다.  저에겐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저자가 아니라 이 작품의 저자예요. 지나치게 긴 희곡이라 겁에 질리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여러분이 <보바리 부인>을 통과하셨다면 이 작품은 정말로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어요.

전 언젠가 앤 래드클리프의 소설을 읽는 독서모임이 나오는 단편을 쓴 적 있습니다. 그 단편을 읽은 어떤 일본 독자가 “한국에선 앤 래드클리프가 번역이 됐나?”라고 트윗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네, 딱 한 권 번역되었어요. <이탈리아인>이라고요. 굉장히 고풍스러운 소설이고 길이도 만만치 않아 약간 공부하듯 읽어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옛 소설의 매력과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아주 괴상한 책을 소개하려고 한 적 있습니다. 전 아담스키의 외계인 접촉담 책을 한 권 갖고 있거든요. 어차피 아담스키는 (그렇게까지 좋다고 할 수 없는) SF 작가이기도 했다니까 이 책은 그냥 SF 소설로 읽고 리뷰를 쓸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같은 칼럼에서 조경철 박사의 UFO 책도 소개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지요.

미루다 결국 넘긴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옛날 아이디어 회관에서 나온 한국어 SF 소설을 리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리즈의 번역물은 대부분 축역/중역판이었지만 한국어 소설은 달랐으니까요. 그래도 그 중 일부는 번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보를 확인하려다 계속 시기를 놓쳤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자, 이제 끝입니다. 앞으로도 전 이런 책들을 꾸역꾸역 읽으며 그걸 소화해 무언가를 만들겠지만 한동안은 여기서처럼 그 과정의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지는 못하겠지요. 언젠가 비슷한 자리에서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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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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