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6.23 조회수 | 2,226

불가능 범죄에서 트릭을 끄집어내는 테크닉

옛날엔 '미스 마플' 시리즈에 나오는 세인트 메리 미드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인 줄 알았다. 평범한 영국의 시골마을이라면서 꾸준히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다시 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정과 나이가 많이 바뀐 미스 마플은 이전처럼 세인트 메리 미드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여행도 잦았다. '미스 마플' 장편 중 세인트 메리 미드가 무대인 작품은 의외로 적다.

적어도 영어권 허구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골 마을은 텔레비전 시리즈 '제시카의 추리극장'에 나오는 캐봇 코브이다. 통계에 따르면 10만명 당 149개의 살인이 일어났다는데, 이건 온두라스보다 60퍼센트가 높다. 그리고 '제시카의 추리극장'은 오로지 주인공 제시카 플레처가 해결한 살인만 다루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이를 설명하는 논리적인 답이 있는데, 이 모든 살인을 사실 제시카 플레처가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아마추어 탐정이 주인공인 모든 장수 시리즈를 설명하지 않을까?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살인사건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까.

에드워드 D. 호크의 명탐정 샘 호손도 수상쩍을 정도로 많은 살인사건과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이다. 호손은 1922년부터 노스몬트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일한 의사이다. 이 도시와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연달아 일어나는데, 그 대부분이 밀실 살인과 같은 불가능한 범죄이고, 호손은 어쩌다 보니 그 근처에 있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샘 호손 시리즈는 1974년부터 2006년까지 (작가는 2008년에 세상을 떴다) '엘러리 퀸즈 미스터리 매거진'에 실렸고 시기는 2022년부터 1943년까지를 커버한다. 대충 보면 1년에 서너 건, 많을 때는 다섯 건 정도의 불가능 범죄가 노스몬트와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호손 선생이 이사오기 전에도 살인사건이 이렇게 많았을까?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은 샘 호손 시리즈의 52편 중 첫 12편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국내에 정식 번역출간된 첫 에드워드 D. 호크의 책이지만, 추리독자들에겐 몇몇 작품들이 익숙할 것이다. 여기저기 앤솔로지에 수록된 적 있고 작품 전체가 수록되지 않았어도 추리 퀴즈의 형식으로 들어온 적이 있기 때문에.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쓰인 20세기 초반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연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시대배경이 1920년대부터 시작되는 것은 그 시기가 이런 종류의 퍼즐 미스터리가 유행이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제 역사보다는 당시의 문학적 유행이 더 중요한 작품이다. 소설은 나이 든 샘 호손의 일인칭으로 전개되는데, 이 ‘현재’는 아마도 1970년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소설이 다루는 불가능 범죄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지붕있는 다리에 들어간 마차가 중간에 사라진다. 야외음악당에서 전설 속 유령처럼 생긴 존재가 나타나 살인을 저지르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모두들 지켜보는 개표소에서 투표 중이던 후보가 살해당하는데 범인도, 흉기도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린 스턴트맨이 내려와서 보니 목 졸려 죽어 있다.

이들은 모두 영리하게 짜인 수수께끼이다. 단지 퍼즐 미스터리에 익숙한 독자들은 읽다보면 작가가 무슨 게임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밀실살인은 유형화된 게임으로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고정 틀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릭 위주의 소설을 그리 좋아한 적 없었던 크리스티도 미스 마플 소설에서 스턴트맨 사건과 같은 틀의 트릭을 다룬 적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 호손 시리즈는 여전히 읽는 재미가 있다. 일부는 정통 추리소설에 대한 향수에 기인한다. 그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다. 사건과 배경을 소개하고 그 안에 트릭의 단서를 숨겨놓고 끄집어내는 테크닉이 정말로 좋아서 작가가 밝히기 전에 트릭을 알아냈다고 해도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안 든다. 작가가 무심한 듯 정교하게 묘사하는 1920년대 미국 시골 마을의 묘사도 뛰어나다. 그리고 소설이 1970년대에 쓰였기 때문에 현대 독자들은 두 겹의 과거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작가인 호크는 1920년대 배경의 소설에서 동성애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지만, 호모포비아에서는 벗어나 있지 못하다. 소설 시리즈가 21세기까지 이어졌다면 작가의 태도는 1970년대 화자인 나이 든 호손의 태도와 또 달라졌을 텐데, 후기작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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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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