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6.17 조회수 | 1,428

케이팝 입문으로 ‘아시아 여자’ 틀에서 깨어나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게이머 걸>의 젠 왕의 2019년작 그래픽 노블 <스타게이징>이 나왔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이 있다면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대만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자 가족의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이머 걸>에도 중국 캐릭터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들은 유럽계 미국인 주인공의 도움과 도움을 받는 남이었으니까.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벨 에포크 시절 백인 유럽인들 이야기였고. 작가가 이전에도 아시아계 주인공을 다루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스타게이징>이 첫 작품이라고 해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수줍어하는 아시아계 예술가들은 흔하다.

<스타게이징>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젠 왕처럼 대만계 미국인이다. 가족은 개신교도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비교적 모범생이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이 표준적인 아시아계 여자아이라고 여기는 그런 아이다. 그런 크리스틴 앞에 문이라는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아빠를 잃고 묘목장을 운영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문은 폭력적이고 성격이 안 좋다는 소문이 돈다.

문과 문의 엄마는 얼마 전까지 크리스틴의 죽은 할아버지가 살았던 별채로 이사 온다. 크리스틴은 처음엔 불편해하고 두려워하지만 곧 문과 친구가 된다. 문은 크리스틴과 정반대의 아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도전적이며 엉뚱하며 무엇보다 아시아 여자아이답지 않다. 전에 소개한 태 켈러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 여자아이다움’은 이 책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는 고민거리이다.

크리스틴과 문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는 케이팝이다. 문은 머리를 밀고 걸크러쉬 이미지를 추구하는 ‘챠라’라는 케이팝 아이돌 팬이다. 솔직히 이미지가 겹치는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는데, 없으리란 법은 없다. 무엇보다 ‘누나라 하지 마, 난 여왕이야 나를 챠라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내가 예쁜 공주인 줄 알았니, 운운’의 가사에는 은근슬쩍 케이팝의 향기가 느껴진다. 주로 미국 음악만 듣던 크리스틴은 문을 따라 케이팝에 입문하면서 아시아 여자아이가 미국 사람들이 보는 제한된 이미지 바깥에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문을 통해 크리스틴의 세계가 조금씩 확장되는 동안, 이야기는 조금씩 불안하게 흔들린다. 문은 종종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폭력 성향을 드러낸다.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자 문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자신이 하늘에서 온 사람이고 언젠가 선녀 친구들이 자기를 데려올 거라고.

그러다 문에게 심각한 사고가 터지고 이후부터는 스포일러이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크리스틴과 문의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젠 왕은 본편 뒤에 이어지는 작가의 말에서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은 허구의 이야기와 이들의 재료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하고 설명한다.

<스타게이징>은 일단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아이가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엮이는 관계의 즐거움과 위험 모두가 입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묘사 속에서 그려진다. 단지 이 보편성은 미국의 중국계 커뮤니티 안이 배경이 되면서 보편성에 차원을 부여하는 특별함을 갖게 된다. 커뮤니티 내 사람들의 섬세한 묘사도 좋지만, 이들이 경계 바깥과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교류의 묘사도 좋다. 책은 자서전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들은 아시아인과 문화가 이전보다 가시화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시대의 아이들이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터져 나왔고 그 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 범죄들이 이어졌다. 허구의 세계를 사는 허구의 아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크리스틴과 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타게이징>과 같은 책 자체가 이런 편견과 맞서 싸우는 도구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훌륭한 이야기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역할이 있다.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불가능 범죄에서 트릭을 끄집어내는 테크닉 2021.06.23
‘일론 머스크’ 같은 엘리트 남성에 대한 풍자 2021.06.09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