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6.09 조회수 | 2,004

‘일론 머스크’ 같은 엘리트 남성에 대한 풍자

언젠가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긴 해야할 것이다. 그게 인류의 생존율을 높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갈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까. 인간은 갈 수 있는 곳은 그냥 간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일론 머스크가 그렇게 화성 탐사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안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단지 우주정복의 과정이 지금까지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의 반복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안이하다. 예를 들어 과거의 SF 작가들은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북미 대륙으로 이주했던 것처럼 지구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새 기회를 찾아 우주 식민지로 진출하는 과정을 상상했다. 하지만 마술과 같은 신기술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한, 우주로 나가는 데엔 여전히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고, 지구를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특별한 교육을 받은 특별한 소수일 것이다. 번창하는 우주 식민지가 생긴다면 그건 지구 사람들이 나가서가 아니라 우주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자손을 생산했기 때문이 아닐까.

요새는 환경파괴와 공해 때문에 외계 행성이나 위성으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인기이다. 과거에는 핵전쟁이 이유였다. 이는 독자나 관객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효과적인 장치지만, 그래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우리 지구인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지구이다. 아무리 절망적으로 오염되어도 마찬가지다. 지구 바깥을 그럭저럭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있다면 지구 위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그 이유 때문이라면 굳이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N.K. 재미신의 작년 휴고 중편(novella)상 수상작인 ‘비상용 피부’(‘에스에프널 SFnal 2021 Vol.2’에 수록)는 환경 파괴로 멸망해가는 고향을 떠나 1천 광년 떨어진 다른 태양계의 행성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시작한다. 이들이 텔러스라고 부르는 고향 행성이 지구라는 것은 굳이 밝힐 필요도 없다. 하여간 엘리트 중 엘리트들만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났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지구보다 중력이 강해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고 조석고정되어 하루가 일 년인 행성이다. 반지름 1천 광년 안엔 더 괜찮은 행성들도 있을 텐데, 좀 더 꼼꼼하게 고르지 않고.

이인칭 소설이다. 모든 소설은 일인칭이니 이건 아주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일인칭 화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을 ‘너’라고 부르며 현재형으로 스토리에 참견하는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여기서 화자는 주인공의 뇌에 이식된 A.I.다. 주인공은 머나먼 고향행성의 거주민으로 아직 온전한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데, 화자가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완벽하고 아름다운 몸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임무는 폐허가 된 지구로 돌아가 무언가 중요한 물질의 샘플을 가져오는 것이다.

심각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는 주인공 ‘너’가 지구에 도착하면서 산산조각 난다. 놀랍게도 지구는 매우 1970년대스러운 환경주의자들의 유토피아가 되어 있고 과학기술도 주인공의 고향보다 더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엘리트 백인 남성들로만 구성된 주인공의 고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이 대부분은 그렇게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지구를 떠난 엘리트 남자들이 아무리 엘리트 중 엘리트라고 해도 그들은 소수이고 지구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지구에는 수십억으로 구성된 사람들과 그들이 유지해온 과학 시스템이 있다. 그리도 앞에서도 말했듯, 가장 끔찍하게 오염된 지구도 다른 행성보다 편안한 곳이다.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해결책은 나오게 되어 있다. 이 정도는 지구를 떠난 엘리트들도 알았어야 했다. 환경 걱정을 하는 지금 사람들도 이 때문에 인류가 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변화된 세계에서 개고생을 할 기간이 엄청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 정도면 약한 월드빌딩을 트집잡을 수 있을 텐데, 재미신의 이 소설의 목표는 처음부터 논리적인 세계를 정교하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지구가 유토피아로 그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상용 피부’의 일차 목적은 풍자이고 그 풍자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자본과 테크놀로지를 독점한 엘리트 남자들을 향하고 있다. 그 풍자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읽어보시길.

단지 아무리 풍자의 방향이 명확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지구의 유토피아를 떠나지 않는 미래는 좀 심심한 느낌이 든다. 엘리트만 갖고 있었던 초광속 여행 기술은 그들도 곧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우주로 진출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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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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