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11.18 조회수 | 1,729

케이팝 업계 내부인이 쓴 자기 경험 바탕 소설

제시카 정의 <샤인> 이전에 케이팝 업계 내부 사람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있었던가? 검색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케이팝 그룹 멤버가 쓴 책들은 꽤 있는 편이지만 소설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샤인>은 작가의 경력만으로도 관심이 간다. 제시카 정이 소속되어 있었던 소녀시대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그룹이다. 작가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며 그룹과 회사를 떠났다. 업계 내부에 대한 직접 지식을 갖고 있고 거기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누가 봐도 자기를 모델로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 것이다.

소녀시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제시카 정과 주인공 레이첼 김 사이에서 수많은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이고 여자 동생이 있고 케이팝을 대표하는 대형 기획사 소속이며 정말로 정말로 오이를 싫어한다. 그리고 레이첼은 소설 끝에서 ‘걸스 포에버’라는 9인조 그룹의 멤버로 데뷔한다.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을까? 특별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회사는 연애를 금지하지만 소속사 안에 사귀는 커플이 있다. 여자아이돌과 남자아이돌은 사회나 대중의 대접이 다르다. 회사는 다른 성격의 음악을 하거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멤버들을 저지한다. 7년 계약은 멤버들을 완전히 보호하지 못한다. 이 대부분은 우리가 이미 알거나 짐작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DB 엔터테인먼트 소속 몇몇 캐릭터들은 실제 인물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아니면 관습적인 창조물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소녀시대 팬들이라면 안 좋은 눈으로 볼 법 하다. 나중에 같은 그룹으로 데뷔하는 몇몇 연습생의 묘사가 가차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너무 전형적인 장르 소악당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경을 끄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정보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독자에겐 뭔가 부족하다. 부족함의 가장 큰 이유는 <샤인>이 영어로 쓰인 미국 소설이라는 것이다. 사건 대부분은 한국에서 벌어지며 자잘한 한국적인 생활 디테일들이 더해지지만 한국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 소설이 그리는 케이팝 문화, 이들을 구성하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에게서 특유의 한국성이 빠져 있는 것은 많이 아쉽다. 한국 독자를 겨눈 한국어 소설이었다면 있었을 법한 무언가가 이 소설에는 없다. 영어권 독자들은 읽어도 모를 것이라 여기고 건너 뛰었을 가능성이 크다. 있었다고 해도 이중, 삼중의 번역 과정 중 날아가버렸거나.

사실적인 한국 소설보다는 1990년대 이후 영어권에서 유행한 Chick Lit(칙릿) 장르의 소설에 더 가깝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소녀시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방에 꽂혀 있던 소피 킨셀라의 책들을 본 기억이 난다. 레이첼, 레이첼의 남자친구가 되는 캐나다계 혼혈 아이돌 제이슨, 레이첼이 다니는 국제 학교 학생들은 그냥 미국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고, 그건 그럭저럭 이해가 된다. 하지만 마트 재벌의 딸이고 레이첼의 네메시스인 미나와 그 일당들까지 미국 고등학교 드라마 악당들처럼 군다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주변 부유층이 누리는 사치의 묘사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럽다. 제이슨의 혼혈 설정은 실제 케이팝 사회의 반영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캐스팅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책은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의 제작팀이 각색 작업 중이다.

업계 내부의 이야기보다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과 한국에서 겪는 경험의 이야기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미국 사회에서 언제나 소수의 외부인으로 지냈던 주인공이 케이팝을 접하면서 느꼈던 자긍심, 한국에서 겪었던 문화 충돌,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다른 방식으로 느꼈던 아웃사이더의 감정은 과장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2부작 소설의 절반이다. 작가는 지금 속편인 <브라이트>를 집필 중이다. 사람들이 진짜로 궁금했을 케이팝 여성 그룹 내부의 드라마와 활동 이야기는 그 때 나올 거 같은데, 작가의 경험과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고려해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내 예측이 완전히 틀린 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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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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