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08.12 조회수 | 865

본업은 시계점 운영, 부업은 ‘알리바이 깨기’? 정통 안락의자 탐정 이야기

‘안락의자 탐정’이라는 표현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셜록 홈즈가 안락의자 탐정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 수록된 단편 '그리스인 통역사'에서 셜록 홈즈는 형인 마이크로프트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탐정 일이 안락의자에 앉아 머리를 굴리며 추리하는 게 전부라면 형은 유례없을 만큼 위대한 탐정이 되었을 거야.” 그렇다면 정말로 마이크로프트 홈즈처럼 안락의자에 앉아 머리를 굴리며 추리하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고 안락의자 탐정이 ‘그리스인 통역사’ 이후에 나왔다고 할 수는 없다. ‘안락의자 탐정’이라는 개념이 그 무렵에 생겼던 것이고, 그 이전에도 사례는 있다. 최초의 추리작가인 에드가 앨런 포가 이미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에서 완벽한 안락의자 탐정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 소설에서 뒤팽은 집 안에 머물며 오로지 신문기사에만 의존해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이런 형식은 페어플레이가 중요한 퍼즐미스터리 소설의 전성기에 어울렸다. 탐정은 독자가 제공받는 것과 거의 동일한 정보를 제공받게 되니까.

이에 속한 작품들로는 뭐가 있을까? 일단 뚱보 탐정 네로 울프 소설 상당수는 여기에 속한다. 다리를 다친 그랜트 경위가 병원 침대에 누워 리처드 3세 사건을 해결하는 조지핀 테이의 <시간의 딸>도 있다. 미스 마플이 만찬회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해결하는 <열세 가지 수수께끼>도 있다.

퍼즐 미스터리의 짧은 전성기가 끝난 뒤엔 안락의자 탐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이들 사라졌지만 이 전통을 현대 스릴러에 이식한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은근히 요새는 안락의자 탐정들이 현실세계로 기어나오고 있다. 인터넷에 부글거리는 네티즌 탐정들은 우리시대의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정통적인 안락의자 탐정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일본이다. 여전히 퍼즐 미스터리가 주류로 남아있는 곳이니까. 그리고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단편집 <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는 황금시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정통적인 안락의자 탐정 이야기다.

탐정 설정은 많이 어이가 없고 작가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탐정은 할아버지로부터 미타니 시계점이라는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미타니 도키노라는 젊은 여자로, 알리바이 깨는 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선대 점주의 방침으로 시계와 관련된 모든 의뢰를 받는데, 알리바이 깨기도 이 중 하나라는 거다. 파출소에 있다가 얼마 전 현경 본부 수사 1과에 들어온 젊은 형사인 화자는 알리바이가 문제인 사건을 맡을 때마다 미타니 도키노를 찾고, 우리의 안락의자 탐정은 형사의 이야기만 듣고 사건을 해결한다.

향수 돋을 정도로 고전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살인현장으로 이어진 눈밭엔 정체불명의 발자국이 찍혀 있고, 알리바이가 없는 용의자는 피가 묻은 잠옷을 입고 깨어나 자신이 몽유병에 걸린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음악 파일 다운로드나 트위터에 올린 사진과 같은 것들이 트릭에 동원되긴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황금시대의 향취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건 이 트릭이 논리적으로 해결되긴 하지만 왜 굳이 그렇게 배배 꼬인 살인을 저질렀는지 궁금해지는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소설이 굳이 사실적일 필요가 있을까? 알리바이 깨기 전문가인 시계점 주인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런 의심을 잠시 접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드라마화되었고 지금 왓챠에서 볼 수 있다. 스토리와 트릭은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는데, 캐릭터 설정이 많이 다르다. 원작의 미타니 도키노는 명탐정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개성도 없는 사람이라 여기에 무언가 추가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장르가 코미디가 되고 미타니 도키노가 안락의자 설정을 깨고 현장 검증을 나가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미타니 도키노를 일본 미디어에 지나치게 자주 많이 등장하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한 애교 덩어리로, 화자를 무례한 중년남자로 만든 건 신경 쓰인다. 개성이 필요했다면 익숙한 습관을 깨고 조금 다른 길로 가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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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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