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08.05 조회수 | 1,773

‘장애 혐오, 가부장 권력’…단단한 현실 기반의 공포물

오늘 소개할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의 <어린 여우들을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2020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중 하나다. 400페이지가 좀 넘는 묵직한 책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단숨에 읽을 수 있을만큼 재미있고 강렬하다. 단지 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이 글을 포함해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읽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또 모르겠다. 어떤 독자들에겐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읽는 편이 더 나을지도. 이 차이는 호러라는 장르를 받아들이는 독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액자구성의 책이다. 음산한 사슴뿔 숲에 사는 일곱 마리의 어린 여우들이 습지 동굴에 사는 늙은 이야기꾼을 찾아가 무서운 이야기들을 듣는다. 액자는 검은 페이지에 흰 글자로 인쇄되어 있어 구분하기 쉽다. 이야기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여우 한 마리씩 집으로 돌아가 마지막에는 한 마리만 남는다.

맨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스승인 암여우 빅스 밑에서 교육받는 어린 여우들이 주인공이다. 빅스는 이야기 초반에 갑자기 괴물로 변해 여우들을 공격하고, 이들은 빅스가 괴물이 되기 전에 가르친 지식을 이용해 탈출해야 한다. 일종의 좀비 이야기인데, 이야기가 동화세계 속 (책을 조금 더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아주 현실에서 격리된 곳은 아니다. 20세기 초반의 영국이어야 한다) 말하는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리 하나가 불구인 어린 여우가 주인공이다. 늘 누나들에게 구박받던 주인공은 자신이 불구라는 걸 싫어해 죽이려는 아버지와 마주치게 된다.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던 주인공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숲에 버려지는 순간에 이야기가 끝난다.

이 정도면 조금 악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는 여덟 편의 이야기 모두를 어린 여우들이 아무런 희망없이 고통받다가 죽어가는 이야기로 끝낼 생각인가? 앞의 두 이야기에서 죽은 여우들의 수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세 번째 이야기에서 첫 번째 이야기의 생존자인 미아가 다시 등장하고, 네 번째 이야기에서 미아가 두 번째 이야기의 생존자 율리를 만나면서 책은 슬슬 전체 구조를 펼쳐 보인다. 이제 늙은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린 여우들이 학대당하며 살해당하는 극단적인 호러물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두 어린 여우들의 투쟁기다. 초반에 그런 척한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책이 되었다. 하지만 그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려 읽으려면 역시 사전정보 없이 읽어야 한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이미 늦었지만.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생각이 조금 난다. 주인공들을 최악의 상황에 몰아넣고 늘 더 무섭고 나쁜 일이 닥칠 거라고 으르렁거리는 늙은 이야기꾼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을 읽는 독자들은 아무리 나쁜 일이 닥치고 주변 사람들이 처참하고 이상하게 죽어나가도 주인공인 보들레르 남매들에게 정말로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작가의 위악적인 말투를 농담처럼 즐기게 된다. 하지만 <어린 여우들을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사정이 다르다. 늙은 이야기꾼이 허풍을 떨면서 공포를 과장하기는 해도 여전히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소름끼치게 무섭다. 주인공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괴물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다. 그 중 가장 악랄하고 뻔뻔스러운 괴물은 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 이건 진짜 직접 읽으시라. 이와 관련된 도시 전설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대부분 훌룡한 호러물이 그렇듯, <어린 여우들을 위한 무서운 이야기>의 공포도 단단한 현실 기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자연의 공포이다. 자연은 무서운 곳이고 야생동물들은 고통과 공포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보다 복잡한 세계를 살고 있는 인간 독자들이 공감하고 곱씹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공포를 집어넣는다. 극단적으로 장애를 혐오하고 가부장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에 집착하는 발톱마왕은 이 공포를 대변하는 캐릭터다. 당연히 이에 맞서는 미아와 율리의 투쟁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본업은 시계점 운영, 부업은 ‘알리바이 깨기’? 정통 안락의자 탐정 이야기 2020.08.12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성공한 할리우드 감독들의 장르를 보는 태도와 시선 2020.07.29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