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07.29 조회수 | 1,078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성공한 할리우드 감독들의 장르를 보는 태도와 시선

<제임스 카메론의 SF 이야기>는 AMC(‘워킹데드’ 제작사-편집자 주)에서 제작한 6부작 TV 다큐멘터리인 ‘James Cameron’s Story of Science Fiction’의 콤패니언 북이다. 이 시리즈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중요한 SF 영화를 만든 몇몇 영화 감독들과 자신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타이틀롤을 연기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인터뷰하는데, 책은 이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담고 여기에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SF에 대한 외부 필자의 원고를 추가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그렇듯 사진 정보가 풍부하다.

일단 카메론은 이런 책의 제목에 이름을 달 자격이 있다. 카메론을 뺀다면 그리 길지 않은 SF의 역사는 많이 심심해질 것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에일리언 2’, ‘심연’, ‘아바타’는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SF 작품으로서도 중요하다. 장르 내의 공헌도 중요하지만 현대문화의 당연한 일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터미네이터’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보라. 카메론은 진지한 SF 팬이고 SF 전문가다. 이 분야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인터뷰를 한 감독들은 카메론 자신,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크리스토퍼 놀란, 기예르모 델 토로, 리들리 스콧이다.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현대 SF 영화의 지평을 바꾼 사람들이고 스콧의 두 작품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는 무시할 수 없는 걸작이다. 델 토로와 놀란의 SF 신작들도 당연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이에 비하면 슈워제네거는 시청률을 위해 불러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 사람은 미국 우파 정치가이기도 하니까, 굳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입장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인터뷰이긴 하지만 이 책을 주도하는 것은 인터뷰어인 카메론 자신이다. 일단 이 책에서 인터뷰하는 어느 누구보다 SF 장르와 과학, 이 둘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다. 앞에 언급된 좋아하는 SF 책과 영화만 봐도 예스러운 구식 장르 팬이라는 게 눈에 보여 친근하다. 맨 처음에 나오는 카메론의 인터뷰는 시리즈의 가이드에 가깝고, 카메론은 여기에 나오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매 게스트에게 들려주며 반응을 본다. 인간과 가까운 인공지능을 창조하는 것의 위험성,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처음 봤을 때의 경험과 같은 것들.

게스트들이 찍은 영화들만 해도 만만치 않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당연히 많다. 예를 들어 ‘에일리언’에서 리플리를 여자로 만들자고 제안한 첫 번째 사람이 당시 제작자였던 앨런 래드 주니어였다는 것 같은.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같은 회사에서 제작한 ‘스타워즈’에서 레아 공주가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는 가정도. 스콧과 카메론은 모두 ‘에일리언’ 시리즈의 첫 두 작품을 감독했으니 이에 대해 할 말도 많다. 각자 입장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호러 장르에 기반을 둔 잡식성 장르팬인 델 토로, 장르를 넘나드는 생산적인 다작가인 스콧은 당연히 카메론과 장르를 보는 태도와 시선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태도도 재미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팬들과의 불화가 가장 심했던 루카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에서 미디클로리언으로 포스를 설명하려고 했던 프리퀄의 시도가 그렇게 끔찍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터라 종종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레아 공주가 ‘스타워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고 양 옆의 두 남자는 보조라는 루카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안 믿지는 않으면서도 이런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좀 더 이야기를 주지 그랬어.”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게스트가 모두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백인 남자 감독(과 주지사)이라는 것이다. SF의 모든 면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SF 영화로 제한한다고 해도 보다 다양한 위치에 있는 게스트들을 초대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 같다. 그들 중 몇 명은 지금의 거물들보다 카메론과 훨씬 죽이 잘 맞았을 수도 있는 것이고.

몇몇 미심쩍은 부분들이 보인다.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의 외계인 옷을 가리켜 ‘캣 피플’의 의상과 같았다고 하는데, 좀 이상한 말이다. 분장한 스턴트맨을 일부러 피한 것으로 유명한 영화니까. 놀란은 목성 궤도까지 가는 메시지의 광속 지연이 여덟아홉 시간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역시 좀 이상하다. 번역 문제는 아닌 거 같고 섬세한 대본 없이 진행되는 인터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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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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