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05.13 조회수 | 1,257

흉기에 찔린 엔지니어…인공지능 범인에게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중국의 SF 작가 하오징팡의 단편집 <인간의 피안>이 번역되었다. 휴고상 수상작 ‘접는 도시’가 수록된 <고독 깊은 곳>에 이은 두 번째 번역서다.

<고독 깊은 곳>의 연장선에 있는 책은 아니다. 같은 작가의 단편집이니 개성이 어디로 날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 단편집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고독 깊은 곳>이 과학을 적당히 무시하거나 과장하면서 SF적 상상력의 극한을 추구하는 다양한 소재와 스타일의 작품을 모았다면 <인간의 피안>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하드SF에 가까우며 21세기에서부터 인류 문명이 다른 태양계의 행성들을 탐사하게 된 미래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그렇다고 이들을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처럼 하나의 미래사에 놓인 작품들이라고 볼 필요까지는 없지만.

첫 단편 ‘당신은 어디에나 있지’의 소재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분신이다.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데이터화해서 자신을 대신에 일을 시킬 수 있으며 외부 관점에서 보면 구별도 어려운 인공지능 분신을 하나 이상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게 여럿 있으면 이 원고도 그 분신에게 대신하게 하고 나는 다른 원고를 할 수 있을 테니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데이터 공간 안에 머물고만 있을까? 이들이 사생활의 영역으로 침범하면 어떻게 될까?

‘영생병원’은 다른 병원에서는 포기한 불치병 환자를 받아 치료하는 병원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를 만나러 병원에 매일 몰래 들어가는데, 여전히 어머니가 병원에 누워있는데도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 중 하나는 가짜다. 그렇다면 병원에서는 무얼 하는 걸까? 재미있게 읽히는 단편이지만 이미 다른 SF에서도 자주 쓰인 재료이기 때문에 이야기나 아이디어가 아주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편집의 전체 맥락 안에서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사랑의 문제’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아시모프스럽다. 인공지능 대변자이고 엔지니어인 남자가 흉기에 찔려 식물인간이 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집에서 일하는 인공지능 집사다. 과연 집사가 범인인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 사건은 인공지능이 인류 사회의 노동을 잠식하기 시작한 지금의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피해자의 가족과 집사의 관계가 꼼꼼하게 그려지면서 이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전차 안 인간’은 튜링 테스트를 뒤집은 짧은 단편이다. 조종하는 게 인공지능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는 소형 기계 차와 마주쳤다. 이 안에 든 것이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건곤과 알렉’의 두 주인공 건곤과 알렉은 인공지능과 인간 어린아이이다. 이미 인공지능은 오래 전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이미 초월적인 존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인간 아이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인간의 섬’도 ‘영생병원’처럼 고전적인 SF적 설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발견한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태양계 문명은 전 인류가 제우스라는 초인공지능의 지배하에 완벽하지만 차가운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이 세계에서 개별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두 단편집을 비교한다면, <고독 깊은 곳>의 다양함과 자유로움에 더 끌린다. <인간의 피안>은 인공지능을 최대한 하드 SF적 틀 안에서 그리려 한다는 틀 안에 갇히다보니 종종 장르 내 다른 작가들이 다루었던 익숙한 이야기로 수렴되고 이전 책에서 보았던 상상력의 폭주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책임감과 그에 따른 엄격한 형식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또 다른 책을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시기에는 보다 엄격한 태도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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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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