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01.22 조회수 | 11,546

‘올바른’ 여성서사? 주인공이 여자라 재밌는 서사!

요샌 여성서사라는 말을 듣는 게 지겨워졌다. 중립적이고 유용한 단어인데, SNS에선 이 표현을 이상하게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볼 때마다 어리둥절해진다.

여성서사. 여자들의 이야기다. <제인 에어>도 여성서사이고 <마담 보봐리>도 여성서사이고 <오만과 편견>도, <작은 아씨들>도, <꿀벌 마야의 모험>도, ‘아가씨’도, ‘벌새’도, ‘대장금’도, ‘헝거게임’도, 할리퀸 로맨스도, 일일연속극도 여성서사이다. 여자가 쓴 작품도 있고 아닌 작품도 있고, 좋은 작품도 있고 형편없는 작품도 있고, 페미니스트적인 작품도 있고 반동적인 작품도 있다. ‘여성서사’는 인류 반의 경험과 지식과 편견을 담은, 온갖 것들이 다 있는 광대한 세계이다. 더 넓어지고 다양해질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그러는 과정에 있지만, 마치 전엔 없었던 것처럼 굴 수는 없단 말이다. 그건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한 명의 독자가, 한 명의 관객이 여자들의 이야기가 부족해 목말라 죽는 일은 없다. 그 안에서 아무리 조건을 엄격하게 제한해도 그렇다. 인간 역사가, 인간 세계가 그렇게 빈약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내가 SNS에서 만나는 이 사람들은 마치 ‘여성서사’를 소비하는 것이 옳은 일을 위한 금욕행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들어보면 여자라는 존재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을 못한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여기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빨간 머리 앤>과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가슴을 조아린 적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다.

이들은 ‘여성서사’를 ‘여자들이 나오는 올바른 이야기’로 제한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어에서 ‘쉬크하게’가 언젠가부터 ‘무심한 듯 쉬크하게’의 줄임말로 쓰이는 것처럼. 하지만 올바른 문학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가 올바른 이야기만을 읽어야 하는가? 그 올바름은 누가 정의하는 건데?

이들은 에이프릴 제너비브 투콜크의 영 어덜트 판타지 소설 <본리스머시>를 어디다 놓을지 궁금하다. 자기 앞가림하는 여자들이 주인공이고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수들도 대부분 여자들이고 남자들은 조연이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는 이성애자이고 이성애 감정 묘사도 있는데 이러면 감점이 되나? 이들 중 머리 끝 부분을 염색하고 다니는 캐릭터는 꾸밈 노동을 했다고 감점 대상이 되는 걸까.

사실 안 궁금하다. 여기서 <본리스머시>를 소개하는 건 이 소설이 ‘올바른 여성서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칼럼에서 이전에 소개한 수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재미있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기 때문에 (꼭 둘 다 일 필요는 없다) 다루는 거다. 물론 여기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남자들이 주인공이었다면 그냥 식상했을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주인공이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이길래?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베오울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야수와 맞서 싸우는 용감한 북유럽 영웅 이야기. 하품이 나온다. 너무 많이 봤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덩치 큰 남자 전사가 아니라 한 무리의 평범한 틴에이저 여자아이들이다. 이들은 ‘본리스머시(the Boneless Mercies)’라는 작은 집단에 속해 있는데, 우리가 아는 중세 북유럽과 비슷한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병자와 노인들을 안락사시키는 게 일이다. 갑자기 재미있어진다. 다른 조건을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자, 식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전혀 다른 근육을 쓰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에이프릴 제너비브 투콜크는 이 익숙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대부분 남자들이 주인공인 노래를 부르는 대륙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여자들을 모아 이야기의 무대를 짠다. 이 세계는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다채롭다. 책 한 권으로는 끝나지 않는 여자들만의 역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쉽게 선악으로 갈리지 않으며 종종 잔혹하고 폭력적이고 오싹하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래가 제대로 불려지지 않는 것은 이 세계에서 그 노래를 짓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프레이가 야수와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를 통해 이 수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끌어올려지길 바랐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올바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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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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