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19.12.11 조회수 | 1,582

현대 일본 그려낸 지옥도…페이지 곳곳에 좌절의 악취가

<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은 마스다 타다노리의 단편집이다. 작가는 1968년생으로, 2013년에 데뷔했다고 하는데 저자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작품수도 적으니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긴 한데. 하여간 이 책에는 데뷔작이고 35회 소설추리 신인상 수상작인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을 포함한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단편인 ‘계단실의 여왕’은 제71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분 최종 후보작이다. 네 편 모두 치밀하게 압축된 강도높은 서스펜스물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읽는 게 가장 좋다.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은 어린 딸을 유괴당한 남자 사이키의 이야기다. 유괴범은 전에도 딸에게 상해를 가하려 한 적이 있다. 경찰에게 신고해도 된다고 하고 몸값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이키는 유괴범의 지시에 따라 매그놀리아 거리로 간다. 그 곳은 얼마 전에 한 남자가 투신자살한 곳이다. 사이키는 당시 현장에 있었고 남자의 자살을 부추킨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유괴범은 인근 건물 옥상 위에 올라가 자살하겠다고 선언한다. 딸을 찾으려면 남자가 자살하기 전에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밤에 깨어나’는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제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카하시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무대가 되는 Y시에서는 밤길을 가는 여자들을 습격하는 범죄자가 산다. 어쩌다보니 다카하시의 체격은 범인과 비슷하고 사람들은 의심을 시작한다. 마을에서는 자경단이 조직되고 우리의 주인공은 이들의 타겟이 된다.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을까?

‘복수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의 주인공 사와이와 가족은 정체불명의 인물이 저지르는 습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그건 사와이가 고등학교 때 가담했던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당시 그 사건으로 타겟이 된 아이가 자살했고 아마도 그 유족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사와이는 범인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그 요구 중에는 살인도 포함되어 있다.

‘계단실의 여왕’에서 주인공은 여자로 바뀐다.(남자 주인공에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성별을 확인하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화자는 아파트 층계참에서 쓰러진 여자를 발견한다. 당장 신고를 해야 하지만 귀찮고 말려드는 게 싫다. 게다가 그 여자는 전에도 그렇게까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이웃이다. 어떻게든 무시하려고 하는데, 여자의 스토커로 추정되는 남자가 개입하면서 일은 점점 꼬여간다.

네 편 모두 더럽게 운이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를 ‘결백하다’는 의미로 읽으면 곤란하다. 이 작품집에 나오는 사람들 중 결백한 사람은 거의 없다. ‘밤에 깨어나’의 다카하시 정도가 그럭저럭 억울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거기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인 악의를 품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곤경으로 몰고가는 인물들은 정의로운가? 그렇지도 않다. 아니, 더 끔찍한 사람들이다. 나름 표면적인 정의를 요구하더라도 그들이 저지르는 일은 가볍게 주인공의 게으른 악의를 능가한다.

<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은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지옥도다. 책을 어느 각도로 보아도 마스다 타다노리가 그리는 현대 일본에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게으르고, 어두운 경제 상황은 그렇지 않아도 그리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더욱 끔찍하게 만든다. 페이지 곳곳에 좌절의 악취가 풍기고, 이들이 비슷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얽히면 난폭한 악몽이 시작된다. 그리고 사법체계와 상식적인 도덕률 따위는 여기서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들의 악몽을 구경하는 것은 분명 짜릿한 독서 경험이다. 하지만 이걸 즐겁다고 말한다면 단어를 잘못 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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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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