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19.11.27 조회수 | 1,964

주인공이 비호감! 고약한 일을 당할수록 재밌다

 

 

지난 11월 22일은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메리 앤 에반스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십진법의 규칙에 따라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어권 소설가 중 한 명이었던 엘리엇의 작품을 돌이켜볼 때가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이는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다. <미들마치>, <다니엘 데론다>, <사일러스 마너>,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아담 비드>와 같은 대표작들은 번역서가 나와 있다.

 

이 중에서 입문서로 가장 좋은 작품은 아마 <사일러스 마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컬럼은 장르 소설을 다루기 때문에 <벗겨진 베일>을 추천하기로 한다. 번역본은 민음사의 워터프루프 북 시리즈에서 나온 작은 책인데 미네랄 페이퍼로 만들어져 물에 강해서 피서지에 들고갈 수 있다. 엘리엇의 호흡이 긴 문체가 피서지에서 가볍게 읽을 책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하긴 가벼움과 어울리는 엘리엇의 소설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사일러스 마너>는 소화가 쉬운 편이긴 하다.

 

<벗겨진 베일>은 조지 엘리엇의 유일한 비사실주의 소설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19세기는 사실주의의 전성기이기도 했지만 환상소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사람이 꿈이나 현실 한쪽에서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수많은 작가들이 양쪽 진영 모두에서 활약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찰스 디킨스와 같은 작가를 들 수 있겠다. 유감스럽게도 엘리엇은 이 세계에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는데, <벗겨진 베일>을 보면 대충 이유를 알 것 같다.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정적인 힘이 다소 부족하다. <벗겨진 베일>을 보면 공감하거나 사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는데, 그것도 이유인 것 같고.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라면 거의 인간혐오적이기까지 한 이 분위기가 나는 썩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를 다른 독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벗겨진 베일>의 장르는 환상소설이지만 여기에 SF가 섞여있다. 여러분이 SF 장르 애호가라면 이 중편을 조지 엘리엇의 유일한 SF라고 부를 수 있다. 엘리엇이 환상문학의 틀에서 사용한 독심술과 미래예측은 모두 SF에 편입된 지 오래이고, 수혈을 통한 죽은 자를 살리는 후반부의 실험은 지금 보았을 때는 어처구니 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썩 그럴싸한 과학이었다.

 

소설의 1인칭 주인공은 래티머란 이름의 남자로 죽음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사형수도 아니면서 1인칭 화자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건 래티머가 초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까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자신의 죽음을 예방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아직 이 작품이 시간 여행 장르가 유행하기 전에 쓰여진 작품이라 아직까지 작가의 상상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래티머가 미래를 바꿀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게 조금 더 복잡하다. 래티머는 부정적인 미래를 보지만 그걸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그 미래가 오는 걸 방치하기도 하니까.

 

래티머는 그렇게 호감이 가는 친구는 아니다. 전형적인 유한계급 출신 19세기 잉여인간으로 건강이 나쁘고 자격지심이 심하고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다. 아빠와도 사이가 안 좋은데, 이 양반은 당연히 더 멀쩡한 남자로 보이는 형 앨프리드를 편애한다. 래티머가 초능력을 얻게 된 뒤로 래티머는 이들을 더 싫어하게 된다. 하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인간 혐오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래티머의 이야기는 초능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앨프리드의 약혼녀가 될 예정인 버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더 꼬여버린다. 버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래티머가 좋아할 법한 사람이 아니다. 외모도 맘에 들지 않고 취미도 안 맞는다. 그런데 래티머는 버사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자기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대에게 매료되는 초능력자라는 클리셰가 이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래티머와 버사의 이야기는 자학의 끝을 달린다. 래티머는 미래를 보기 때문에 자신이 버사와 결혼할 것이라는 것, 후에 버사의 마음을 읽게 되고 두 사람이 서로를 혐오하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형을 밀쳐내고 버사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매료된 이 남자는 은근슬쩍 이 디테일을 밀쳐버리고 버사와 결혼해버린다. 그 뒤에 이어지는 건 서로를 증오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고문극으로 그 절정은 앞에서 말한 SF적 실험을 통해 폭로된다. 이 실험은 결말을 위해 억지로 붙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폭로 자체는 읽으면서 심술궂은 미소가 스며나올 정도이다. 어차피 작가와 독자 모두 두 주인공을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고약한 일을 당할수록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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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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