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18.01.31 조회수 | 14,036

페미니스트 소설가로서의 어슐러 르 귄

어슐러 K. 르 귄은 지난 1월 22일(미국 현지시간) 88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사람들은 종종 어슐러 K. 르 귄이 남긴 업적의 위대함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위치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르 귄이 페미니스트였던 거 맞다. 페미니즘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중요한 작품도 많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도달하는 르 귄의 문학적 여로는 생각보다 배배 꼬여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아주 단순한 계산을 해보자.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장편소설이 얼마나 되는가? 첫 작품은 1970년에 나온 <아투안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은 중간부터 게드가 주인공인 ‘어스시’ 삼부작의 틀 안에 묻혀버린다. 다음 여자주인공은 <왜가리의 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게 1978년작이며 그 주인공의 비중도 그렇게까지 크거나 의미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첫 장편 <로캐넌의 세계>를 쓴 1966년부터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르 귄은 거의 전적으로 남자들의 이야기만 써온 것이다.

 

남자들에 대한 책을 쓰는 여성작가들은 흔하다. 로즈마리 셧클리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셧클리프는 고대 배경의 역사소설 전문가였다. 하이스미스는 못돼쳐먹은 책을 쓴 못돼쳐먹은 작가라 굳이 변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 이들과는 달리 어슐러 K. 르 귄은 먼 미래나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삼고 종교, 문화간의 소통, 환경, 인종, 반전에 대한 진지하고 선량하고 현명한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이런 작가가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꾸준히 꺼려했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6,70년대는 페미니스트 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 당시 르 귄보다 여성 캐릭터와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인 남성작가들을 찾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새뮤얼 딜레이니, 존 발리와 같은 작가들이 떠오른다. 심지어 아시모프나 하인라인도 당시 르 귄보다 여자들에 대해 더 많이 썼다. 여성 작가들은 당연히 더 많고.

 

종종 르 귄의 소설들은 여자들에게 무관심한 정도를 넘어서 여혐의 흔적을 드러냈다. 어스시의 세계는 그냥 남성중심인 정도가 아니라 작정하고 여자들을 업신여기는 곳이다. 여자들에겐 심지어 톨킨의 가운데땅보다 못하다. 여성작가가 만든 세계가 “여자의 마법처럼 약하다”나 “여자의 마법처럼 음험하다”라는 속담이 일상화된 곳이라면 당연히 여러분은 여성 캐릭터의 역습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르 귄은 <머나먼 바닷가>로 삼부작을 일단 완결할 때까지 여기에 대해 거의 비판하지 않았다. <어둠의 왼손>은 양성인간들을 등장시켜 젠더에 대해 고찰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양성이라기보다는 모두 남자들, 그 중에서도 BL(‘Boys love’의 약자로 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성향 만화를 가리킨다-편집자 주)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여기엔 대명사의 문제도 컸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에 꽤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르 귄은 이 책을 자신의 첫 페미니스트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그 책에도 여자들이 거의 나오지 않으니 좀 어이가 없다.

 

르 귄의 이런 태도는 당시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가장 맹렬한 비판가는 동료 SF 작가였고 비평가였던 조애나 러스였고 러스의 에세이 ‘The Image of Women in Science Fiction(SF 속 여성 이미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어둠의 왼손>에 대한 비평은 유명하다. 당시엔 가차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보면 다 맞는 말이어서 심심할 정도다. 르 귄의 이유는?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당시 르 귄은 판타지와 SF 이야기의 전통을 따랐고 그 전통에 따르면 ‘보편인간’ 주인공은 남자였다. 지금 들으면 어이가 없는 변명이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르 귄은 뒤늦게 페미니즘 영향을 받은 작가였다

 

르 귄의 전환은 1978년부터 시작된다. 앞에서 말한 <왜가리의 눈> 때부터다. 이 책도 남자주인공을 내세워 쓰다가 중간에 그가 이야기를 계속 이끌 수 없을 정도로 고장나자 옆에 있던 여자 캐릭터를 갖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은 것이다. 당시 르 귄은 여자주인공을 갖고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몰라 진짜로 갈팡질팡했고 온갖 페미니즘 서적들을 읽으면서 정신무장을 했으며 이야기가 완결되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동안 “왜 그렇게 남성중심인가요? 왜 남자들만 나와요?”란 질문들은 그렇게까지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걸까? 모르겠다. 여기서 중요한 건 르 귄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작가가 아니라 뒤늦게 영향을 받은 작가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르 귄은 주도적인 페미니스트로서보다 페미니스트의 적극적인 비평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명예남성 시절의 르 귄 소설에서 페미니즘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과잉해석을 거쳐야 한다.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려는 작가들에게도 <어둠의 왼손>은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니라 딛고 일어서야 할 디딤대다.

 

이 후 르 귄의 작품 성향은 칼로 자른 것처럼 바뀌었고 이후 전과 같은 남성중심적인 작품은 거의 쓰지 않았다. 이 시기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건 기존 세계의 수정작업이다. 1990년 <테하누>를 쓰면서 르 귄은 드디어 어스시 세계의 여혐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여자주인공들을 등장시킨다. 여러분 중 이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당시 어스시 남자팬들은 <테하누>를 무지 싫어했다. 작가가 자기가 좋아했던 판타지 세계를 깨부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소동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 그 반발의 모양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걸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일이니 다른 예들도 찾아 미리 연구하고 대비하는 게 좋겠다.) <테하누>를 마지막으로 ‘어스시’ 시리즈를 종결하려던 르 귄이 나중에 ‘어스시’ 책을 두 권 더 썼던 것도 이 반발을 보다 확실하게 억누르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단 어떻게든 “여자의 마법” 운운 하는 속담을 해명하고 여자들을 어스시의 역사 속에 더 들여보내야했다. 그래야 그 세계는 온전해질 수 있었다.

 

<어둠의 왼손>이 속한 해인 우주도 수정에 들어간다. 가장 좋은 견본은 <세상의 생일>에 수록된 단편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인데, 이 작품은 <어둠의 왼손>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모두 옳았다고 인정하는 답변서에 가까우며 조금 더 무리해서 본다면 비판가들과 함께 쓴 공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의 왼손>의 배경인 게센이 무대이고 게센인이 주인공이지만 이 세계는 <어둠의 왼손>의 게센과 전혀 달라보인다.

 

일단 게센인의 생김새부터 다르다. 아마 <어둠의 왼손>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수염없는 여성적인 남자들처럼 상상했을 것이다. 독자들의 상상력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설 자체가 그 방향으로 몰아가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에서 꼼꼼히 그리는 게센인의 육체는 여성의 몸에 더 가깝다. 당연한 게 아닌가? 이들은 젖을 먹여 아이를 키우는 태생 동물이다. 다른 어떤 몸을 가질 수 있겠는가. 르 귄은 이외에도 <어둠의 왼손>에는 거의 찾을 수 없었던 여성성을 이 단편에 잔뜩 불어넣는다. 물론 남성대명사는 케메르집 구석으로 밀려난다.

 

 

지나치게 균형잡힌 르 귄의 소설…불균형한 시대에 갖는 한계 분명

 

르 귄은 명예남성으로 10여년 동안 활동했고 <왜가리의 눈> 이후 40년의 세월이 더 남아있었다. 이 정도면 늦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르 귄의 작품들을 보면 그래보이지 않는다. 르 귄은 이 전환 이전에 이미 ‘어스시’ 삼부작,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바람의 열 두 방향>, <하늘의 물레>를 썼다. 한 마디로 르 귄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대부분이 이 명예남성 시기에 나온 것이다. 모든 작가들에겐 창작열이 불타오르는 시기가 있는데, 르 귄에게 전환은 첫 번째 불길이 사그러진 뒤에 찾아왔다.

 

뒤에 나온 작품 중에도 좋은 책은 많지만 양쪽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아쉽다. 그리고 르 귄의 페미니즘은 여전히 좀 갑갑한 구석이 있다. 80년대 이후 영어권 페미니즘 SF의 역사를 르 귄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만행이겠지만, 르 귄이 여성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러스와 팁트리 주니어의 분노에 찬 글들과 비교해보면 르 귄의 책은 지나칠 정도로 예의바르게 균형을 잡고 있는데, 이 불균형한 시대에 이런 균형잡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모든 사람들이 분노에 차 있을 수는 없다. 우리에겐 다양한 목소리와 입장과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르 귄과 다른 길을 걸었던 수많은 SF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소개하고 르 귄의 작품들을 그 일부로서 보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읽어야 하고 쓰여져야 할 책이 아직 많다.

 

* 사족이긴 한데, 그래도 몇 마디 더. ‘어둠의 왼손’ 텔레비전 시리즈가 기획 중이다. 르 귄 자신도 생전에 컨설턴트로 참여했고. 르 귄은 이전에도 이 책을 영화 각본으로 각색하려 시도했는데, 잘 되지 않았나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전환 이후였기 때문에 이전에 썼던 이야기와 설정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생전에 그 문제점이 해소되었는지, 시리즈에 전환 이후의 생각이 반영될 것인지, 걱정되면서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대명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둠의 왼손>은 2015년에 BBC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된 적 있다. 이 각색에선 게센인 역으로 여성 배우와 남성 배우들을 골고루 섞어 썼다. 에스트라벤 역은 레슬리 샤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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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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