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다시 도요타인가 등록일 | 2016.12.12 조회수 | 4,035

도요타가 컨설턴트를 리더로 뽑지 않는 이유

도요타가 위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위기를 통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도요타의 리더들이 전문가이고, 그래서 조직 내 전문가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요타가 대기업병을 뜯어고치기 위해 종업원 34만명의 거대 회사를 7개 컴퍼니로 나눈 뒤 각각의 컴퍼니 사장이 된 7명을 살펴보자. 이들 모두가 자기 분야와 현장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평가를 들으면서 성장해온 인물들이다.

아키오 사장은 자동차 전문가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보자. 그는 2016년 1월 소형차 제휴관계에 있던 다이하쓰자동차를 완전 자회사로 한다고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다이하쓰 사장과 함께 출연했다. 꽤 긴 시간 양사 사장의 발표와 질의·응답이 이뤄졌는데, 그 진행이나 대답의 수준이 대단히 훌륭했다. 발표는 프롬프터를 읽어서 한다고 하더라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즉흥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답변이 완벽했던 것이다. 대기업의 총수인 그가 다른 임원들에게 맡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사 전반의 일을 꿰고 있다는 방증이다.

2016년 5월의 실적발표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한국 대기업의 실적발표회장이라면, 기업 총수가 직접 등장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발표회장에 등장한 3명의 임원 중에는 아키오 사장이 있었다. 그는 재무 담당 부사장의 수치에 기반을 둔 실적 발표에 앞서 도요타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설명은 훌륭했다. 역시 모든 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그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는 아키오 사장 역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키오 사장은 외국의 유명한 자동차 경주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그냥 재미 삼아 즐기는 수준이 아니다. 매우 어렵고 위험하고 전문적인 경주대회에 직접 헬멧을 쓰고 복장을 갖추고 프로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전력을 다해 드라이빙에 나선다. 아키오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단지 즐길 생각이라면 사적인 공간에서 좋은 차 갖다 놓고 몰아보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최정상급 자동차 경주대회에 직접 나간다. 왜 이런 일을 할까? 그만큼 자신이 자동차 전문가들의 세계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도요타의 전 직원과 고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 가지 기술을 끝까지 파고들어 본 사람은 본질과 만난다

일본의 대표적 기술기업 중 한 곳으로 세이코엡손을 꼽는다. 필자는 우스이 미노루 사장을 세이코엡손 본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리더는 전문가여야 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의 기술을 끝까지 파고들어 본 사람은 기술과 경영에 본질적으로 통하는 것이 많다고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겠지만 시간과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택해야만 합니다. 또 어떤 쪽이든 방향을 압축해야만 할 때가 옵니다. 우선순위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회사의 힘을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결단력과 함께 식견이 필요합니다. 이때 기술을 끝까지 추구해서 성공해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도요타나 세이코엡손 같은 기업에서는 리더가 기술에 대해 아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기술을 아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대중이 그것을 정말 필요로 하고 편리하다고 생각할까’라는 문제까지 고민한다는 뜻이다. 기술을 아주 깊이 이해하는 리더는 설사 어떤 기술의 선택이나 개발에서 큰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반드시 교훈을 얻게 된다. 이런 점이 반복되면서 뛰어난 리더에 가까워질 수 있다.

조직의 역량은 리더의 역량을 뛰어넘을 수 없다

최근에는 리더의 덕목으로 조합이나 연결 능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더의 전문성 수준이 낮다면 아무리 연결하고 조합하더라도 연결과 조합의 수준 자체가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뛰어난 리더는 우선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전문가를 리더에 등용함으로써 더 많은 전문가를 키워낼 수도 있다. 자신이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닐 때는 직원 가운데 누가 최적이고 최고인지 알기 어렵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할 수 있다.

이와 반대되는 사례를 들어보자. 리더가 전문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다. 현대자동차의 외부 컨설턴트 출신 본사 마케팅 중역이 어느 날 현대자동차의 내수 시장 주력 SUV인 싼타페 담당 실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싼타페 잘 팔리죠? 가솔린이 많이 팔리죠?” 이 말을 들은 싼타페 담당자는 할 말을 잊었다. 싼타페의 내수 판매 차종 가운데는 디젤 엔진 모델만 있을 뿐 가솔린 엔진 모델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 담당자는 “그 중역이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일선 영업소에 방향을 알 수 없는 지침이 남발돼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컨설턴트를 리더로 뽑지 않는다

도요타가 컨설팅회사에 경영 진단 또는 전략 수립을 위탁하거나, 컨설턴트 출신을 회사의 리더급 임원으로 뽑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컨설턴트들이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동차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사내에서 30년쯤 다져진 검증된 베테랑 엔지니어들을 각 부분의 리더로 중용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는 판단·결정·실행 능력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그 리더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즉 어떤 리더를 뽑아서 직원들에게 롤모델을 제시하는가의 문제다.

도요타는 내부 인사들 가운데 자기 업무에서 최고인 사람들을 리더로 뽑는다. 최근에는 아예 일본의 자동차부품 업계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하는 사례도 생겼다. 자동차 업계 전체의 인재 풀 가운데 최고의 전문가를 뽑아 리더를 맡긴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전문가를 우대하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도요타는 앞으로 이런 인사를 점차 늘려나갈 전망이다.

※ 본 연재는 <왜 다시 도요타인가>(최원석/ 더퀘스트/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최원석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 취득, 조선일보 산업부와 경영전문 섹션 ‘위클리비즈’에서 근무하며 전세계 성공 기업들을 취재하고 내로라하는 CEO·석학 등을 직접 인터뷰했다. 특히 도요타 본사를 심층취재하며 아키오 사장과도 직접 만난 것을 기회로 그들의 탁월한 위기관리와 지속성장의 비밀을 통찰할 수 있었다.

서머셋 몸의 '안티 스파이물'... 제임스 본드를 기대하지 마라 2016.12.14
밥상머리 예절, 아이 교육의 시작이다 2016.12.12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