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봉주르! 이정아의 미술박물관 등록일 | 2009.07.10 조회수 | 11,779

유럽을 휩쓴 죽음의 공포 흑사병

유럽을 휩쓴 죽음의 공포, 흑사병(Black Death)


지난 4월 멕시코와 미국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A(H1N1)가 처음으로 발병한 이후 전 세계 감염자 수가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감염자 수는 지난 17일, 미국, 멕시코를 비롯한 89개국에서 3만9620명, 전 세계 사망자 수는 10개국 167명에 달합니다. 

최근 외신 발 보도에 따르면 신종 플루의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흉흉한 얘기마저 나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지요. 국내 신종 플루 감염자가 79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신종 플루에 손발입병(수족구병)에 A형 간염까지. 대한민국에 때 아닌 전염병 공포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사스(SARS)의 공포를 기억하시나요? 조류독감은 또 어떻고요. 일단 전염이 시작되면 수천만 명이 죽는 공포의 전염병, 이러한 신종 바이러스들이 스멀스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공포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 그 불가항력적인 위협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사실 전염병은 인류 역사의 가장 큰 공포였습니다. 인류는 지난 1000년 동안 자연 자원을 찾아 이동할 때마다 새롭게 만난 바이러스와 세균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죠. 바이러스와 세균으로 인한 전염병은 인류 문명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인류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집단공포 속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생존의 메커니즘을 배워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정복한 전염병은 천연두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바꾼 질병 중에 페스트(Pest, Plague)만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인 질병도 없을 것입니다. 죽은 시체에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Black death)’으로도 불리는 인류 최악의 전염병은 14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상 최악의 해로 기억되고 있는 1348년, 그 해 유럽은 이 무시무시한 전염력을 가진 흑사병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1346년 크림 반도 남부 연안의 페오도시야을 공격하던 몽골 기마병들은 흑사병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도시의 성벽 너머로 던져 넣었습니다. 그 결과 도시에 흑사병이 퍼지게 되었죠. 살아 남고자 도시를 탈출한 사람들은 무역 항로를 따라 흑해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서운 흑사병과 함께였습니다. 흑사병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퍼져갔습니다. 1347년 이탈리아를 강타하고 같은 해 말 마르세유, 아비뇽에 이르러 1348년에는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1349년에는 영국을, 이어 1350년에는 북부 유럽을 거쳐 아이슬란드와 러시아에까지 이르렀고, 그뿐 아니라 이집트, 북아프리카,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엄청난 속도로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고, 중세유럽을 혼란의 시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흑사병이 이렇게 빨리 전염된 것은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인한 잦은 왕래와 도시의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병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흑사병은 페스트의 일종으로 폐에 병균이 침입하는 폐 페스트를 일컫습니다. 일단 감염되면 별안간 고열이 치솟고, 몸 곳곳에 주먹만한 검은 종기가 부풀어 오릅니다. 환자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해내다가 결국 목숨을 잃게 됩니다. 대개 발병한 지 24시간 내에 사망하고 마는데, 사망 직전에 환자의 부가 흑색 또는 자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흑사병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당시의 유럽인들은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과 절망과 비탄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죠. 생존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갑자기 쓰러져서 헛소리를 하다가 죽는 환자를 속수무책으로 지켜 보다 매장하는 것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장을 거들었던 인부와 성직자조차 전염되어 쓰러지자 시체는 물론 쓰던 물건까지 불태우는 것이 살아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죠. 또한 환자가 발생한 집은 병균이 못 나오게 한다고 문을 걸고 못질을 하거나 불을 질렀기 때문에, 산 채로 불타 죽는 환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도 소용없었습니다. 흑사병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가리지 않고 생명체는 닥치는 대로 쓰러뜨렸습니다. 


흑사병은 절대 권력 중세 교회를 무너트렸습니다. 교회 종소리는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절망의 소리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지성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는 1348년에 흑사병이 플로렌스에 닥쳤을 때의 끔찍한 상황을 생생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데카메론>은 10일 동안 농촌 별장을 향해 도시를 떠나고 있는 7명의 숙녀와 3명의 신사의 이야기죠. 그 첫 번째 이야기가 흑사병에 관한 것입니다.

“병에 걸린 시초에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종기가 생겼는데, 이러한 종기 중 어떤 것은 사과 크기만큼 자라났고, 다른 어떤 것은 계란 정도만 했다. 사람들은 이 혹을 페스트 종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몸의 그 두부 위에서 순식간에 치명적인 종기가 온몸에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어 팔이나 허벅지 등에 퍼져 다른 모든 부위에 납빛 또는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큰 반점은 그 숫자가 적은 형태로 퍼지고, 작은 반점은 많이 나타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반점은 죽음에 대한 선고였다. 이 전염병에는 어떤 의사의 진단도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페스트에 대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1347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단 3년 만에 북진을 거듭하며 유럽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상이 흑사병으로 죽었습니다. 흑사병은 유럽 사람들을 사회적 공황상태로 내몰았죠. 전쟁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의 절대 진리인 중세 교회도 어쩔 도리가 없었죠. 교황청만 해도 추기경들의 절반이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도시와 마을을 떠났습니다. 가족조차 버려야 했죠. 병균이 떠다니는 공기를 직접 대하지 않으려고 흰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흑사병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광기와 미신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당시 의학계는 토성과 목성이 겹치는 천체이변의 결과라고 공식 발표를 하는 등 우왕좌왕하기만 했죠.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살인과 집단 사살이 행해졌습니다. 유언비어가 횡행하고 사람들은 난폭해졌습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곡식을 심지 않았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이것은 그냥 평범한 유행성 전염병이 아니었습니다. 중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의 분노 ’흑사병’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희생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리고 희생 제물로 유태인이 제격이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사람들로, 또한 상술이 뛰어나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던 유태인들은 대량 학살되었습니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생매장당하거나 산 채로 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이 같은 유태인 대량학살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전 유럽지역에서 행해졌습니다. 흡사 관동대지진의 원인이 조선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한 일본인들처럼 사람들은 유태인에게 책임을 물고 분풀이를 했던 것인데, 공포에 몰린 인간의 모습은 흑사병만큼이나 잔혹합니다. 


이렇게 온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흑사병은 1348년을 고비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도시의 대화재로 인하여 목재 건축물이 석재로 바뀌거나 하수구 정비 등을 통해서 위생이 개선되어 쥐벼룩을 막음으로써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 인구는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파리는 인구 15만 중 5만을 잃었고, 제네바는 인구 5만 중 겨우 몇 천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영국은 거의 절반의 인구를 잃었죠. 300년이 지난 17세기에 이르러서야 흑사병 이전의 수준으로 유럽 인구가 회복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1340년대 흑사병으로 희생된 유럽 인들의 수는 약 2천5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슬픔이 도처에 깔리고 공포가 사방에서 조여오는구나.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이 시대가 오기 전에 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없이 한다. 세계 전체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기록을 먼 훗날에 태어날 우리 후손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14세기 이탈리아 인문학자 프란치스코 페트라르카의 말처럼 그 실상은 분명 믿기 힘듭니다. 

현대에도 에이즈라는 죽음의 전염병이 있지만, 그것은 세계 전체를 뒤바꿀 만큼 무시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서 커다란 전염병의 발생은 사회적ㆍ경제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성까지도 바꾸는 엄청난 충격이었죠. 인류 역사를 통틀어 발생했던 모든 재앙들 가운데에서도 흑사병은 가장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소설 <페스트>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에게 흑사병은 부조리, 사회 악의 상징이었습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제고 다시 돌아 오기 때문에 인간은 이에 맞서 싸우고 대항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죠. 카뮈는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일러 주기 위해서 또 다시 저 쥐들을 어떤 행복한 도시로 몰아 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 고 소설 <페스트>에서 말했습니다. 

어떤 재앙은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너무나 강력하게 몰아 닥치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재앙에 대해 채 알아 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죽어 나가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흑사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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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정아

이정아의 시선으로 전해주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의 세계는 한 마디로 '쉽다'. 러시아어가 전공인 그녀는 러시아에서 노문학을 공부하던 중 그림에 매료되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인도, 유럽, 동남아 등 발길이 닿는 곳으로 여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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