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근두근 자동차톡! 등록일 | 2012.07.09 조회수 | 123,985

[수퍼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페라리의 본산에 가다

 

이탈리아 마라넬로는 기대와 달리 ‘깡촌’이었다. 도로는 차 두 대가 서로 엇갈려 지나기에도 비좁을 지경이었고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녀도 마주친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전날 자정 무렵 볼로냐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몇 달을 머문들 당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촌 동네를 보고 있자니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게다가 정수리에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남부 유럽의 나른한 햇볕이라니……. 쥐꼬리만큼 남아 있던 에너지마저 홀라당 증발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주 간혹,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멀리서 들려오는 배기음만이 이 심심한 동네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서였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모터스포츠의 명가, 페라리의 본거지다. 세계 최고의 수퍼카가 바로 여기,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한 이탈리아 북부 촌 동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문득, 몇 년 전 스페인 남부에서 만났던 늙은 농부의 나뭇가지처럼 굵고 거친 손가락이 떠올랐다. 평생 햇볕에 그을리기를 반복해 코끼리 가죽 같아진 피부에 뭉툭한 손가락으로 그가 주무르고 있는 포도가 조금만 있으면 세계 최고의 와인이 될 거라던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충격적인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수퍼카는 말 그대로 고성능 스포츠카의 범주를 뛰어넘는 초능력 차다. 이 영광된 명칭을 처음 부여받은 차는 1967년에 데뷔한 람보르기니 미우라였다.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가 그려낸 예술품 같은 보디(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차다)에 V12 4.0리터 350마력 엔진을 올린 이 차는, 미적으로나 성능으로나 당시 모든 스포츠카를 뛰어넘는 존재였다. ‘수퍼’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도 그래서다.

 

 

↑ ‘수퍼카’라는 이름을 처음 부여받았던 대표선수, 람보르기니 미우라의 멋진 모습들

 

트랙터 제조로 큰돈을 번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엔초 페라리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욱하는 마음에 스포츠카 회사를 세운 일화는 자동차 역사상 유명한 사건이었다. “무엇을 하든 페라리 이상”을 모토로 내건 그가 미우라를 만들어 선보이자 페라리도 질세라 초강력 스포츠카를 내놓았고, 포르쉐와 부가티 등 유서 깊은 스포츠카 브랜드들도 앞 다퉈 성능 높이기에 뛰어들었다. 소위 ‘수퍼카 전쟁’이었다. ‘과연 시속 250km로 내달리는 차가 우리 일상에 필요한가?’라는 논쟁은 늘 있었지만, 어쨌든 그 경쟁의 와중에 고성능과 고품질이라는 부산물을 얻을 수 있었으니 수퍼카는 어떤 식으로든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렇다면 엄청난 배기량의 엔진을 올리고 무서운 성능을 뿜어내면 무조건 수퍼카일까? 일단 5P(Power․Performance․Proportion․Passion․Price)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도 아직 수퍼카는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요소 하나가 더 첨가돼야 한다. 바로 브랜드 가치다. 앞의 다섯 가지는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있지만 브랜드 가치는 원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자동차 강국 일본도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수퍼카를 갖지 못했다. 얼마 전 렉서스가 LF-A를 내놓았지만 아무도 이 차를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와 비교하진 않는다. 성능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으나 LF-A에는 가슴 뛰는 흥분 대신 냉철한 이성이 자리 잡고 있다. 토요타(혹은 렉서스)는 분명 좋은 브랜드이지만 아무도 그 로고를 보고 흥분하지 않는다. 골목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토요타 차에 환호성을 지르며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무척 드물다. 거듭 말하지만, 토요타는 훌륭한 자동차회사다. 기술적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좋은 차를 만드는 브랜드와 수퍼카를 만드는 브랜드 사이에는 이런 ‘정서적 간극’이 존재한다.

 

수퍼카의 정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차가 1971년에 등장한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다. 람보르기니의 존재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차이기도 하다. 키 177센티미터가 넘는 사람은 드나들기도 어렵고 겨우 올라탄다 한들 후방 시야는 ‘완전 꽝’이어서 후진할 때마다 도어를 열고 몸을 밖으로 완전히 빼내야 했던 이 차에 많은 사람이 열광한 건 바로 무지막지한 힘과 말도 안 되는 성능, 감당 못할 정도로 힘든 운전, 그리고 세상 모든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요소를 몽땅 모아놓은 듯한 멋진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카운타크의 비실용성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페라리 FF. 페라리 최초의 네바퀴굴림 차로 옆모습 비율이 예술이다

 

속도에 대한 탐욕으로 치자면 페라리를 따라갈 브랜드가 없다. 페라리는 설립 초기부터 모든 기술력을 오직 고성능에만 집중해왔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부터가 걸출한 레이서 출신이었다. 설립 40주년을 맞아 1987년에 발표했던 최고출력 478마력의 수퍼카 F40은 엔초의 고집이 가장 잘 구현된 차이자 그의 유작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페라리는 F50과 엔초, 최근의 458 이탈리아와 FF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계보를 형성하며 최강 수퍼카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뿐 아니다. 맥라렌 F1이나 파가니 존다도 비현실적이기로 치자면 둘째가기 서러울 차들이다. 조그만 버튼 하나까지 일일이 깎아 만들고 실내 바닥에까지 최상급 가죽을 깔아놓은 파가니 존다는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차다.

 

 


↑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있는 페라리 공장. 이곳에서 숨 막히는 수퍼카들이 만들어진다

 

수퍼카는 이처럼 뜨겁고 비이성적이다. 화끈한 성능과 함께 예술적 감성도 있어야 한다. 일일이 짚어가며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기계이지 수퍼카는 아니다. 마라넬로라는 소도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페라리뿐인 것 같았다. 로터리 한가운데에도 페라리 로고가 우뚝 서 있고 도시 곳곳에 페라리 공장과 페라리 박물관, 페라리 기념품점, 페라리 디자인센터가 흩어져 있다. 심지어 가장 큰 호텔과 레스토랑도 페라리로 먹고 산다. 관광객들은 페라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 기꺼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페라리 로고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어쩌다 식당에서 페라리 팀 드라이버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흥분에 몸서리친다. 남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은 페라리 로고 하나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화끈한 도시로 돌변했다. 페라리가 정녕 좋은 차인지 아닌지, 휘발유를 잔뜩 들이키며 시속 300km로 달리는 이 차가 과연 요즘 세상에 어울리기나 하는지 같은 걸 따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보기만 해도 마냥 흥분되는 존재, 그게 바로 수퍼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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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우성

책 읽고 글 쓰고 자동차 구경하는 재미로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보내고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만만찮은 사회생활에 허덕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진정 행복하겠다’는 희망에 기대어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잡지 기자로 전직한다. 간혹 직업이 되어버린 취미에 치를 떨 때도 있지만 마음껏 차를 타고 원 없이 글 쓰는 호사를 벌써 13년째 누리고 있다. 월간 <카비전Car Vision> 기자와 월간 한국판 편집장, 조선매거진㈜ 기획취재팀장을 거쳐 지금은 월간 한국판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수퍼카, 디자이너, 플랫폼, 하이브리드, F1 등 30가지 자동차 키워드에서 출발해 세계 자동차문화의 가장 뜨겁고 환상적인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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