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1.02.03 조회수 | 2,226

사기꾼에 넘어가고 싶지 않은 독자를 위한 교과서

이미 오래 전에 정체가 폭로되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넘어가는 트릭이 있다. 사람 몸을 두 조각 내는 것 같은 고전 마술의 트릭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지만 훌륭한 마술사의 정교한 연출 안에 들어가면 여전히 놀랍다. 우리는 영화 속 특수효과에 대해 알만큼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둘 다 트릭 자체보다는 이를 구현하는 테크닉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관객들은 그게 트릭이라는 걸 알고 왔다.

하지만 무대와 스크린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사람들을 진짜로 속이고 갈취하는 트릭이 있다. ‘콜드 리딩’이 그 중 하나인데, 사전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의 과거나 현재 상태를 읽어내는 트릭이다. 사전 조사와 같은 적극적 작업이 들어가는 건 ‘핫 리딩’이라고 하고 그외에 다양한 변주가 있다. 이미 이 테크닉은 오래 전에 노출되었고 이에 대한 책도 꽤 나왔다. 그 중 하나는 고전 중 고전이다. 테크닉을 숨기고 사람들을 기만하지 않을 뿐, 셜록 홈즈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콜드 리딩의 달인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기꾼들이 무대 밖에서 영매, 점쟁이, 독심술사를 자처하며 이를 이용한다. 모두가 아는 “영이 맑으시네요”, “도를 아십니까”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 해묵은 트릭에 넘어간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 대부분이 읽기 쉬운 평범한 부류지만 이들은 모두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나이트메어 앨리>를 위해 쓴 닉 토시즈의 서문을 읽고 콜드 리딩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서 처음 인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쓰이는 ‘geek’라는 단어도 여기서 처음 쓰인 것 같다고 한다. 이 소설이 1946년작이라는 걸 생각해보라. 이 당시엔 외부인인 그레셤도 알고 있던 트릭이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고 다음 해에 당시 인기배우였던 타이론 파워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 간단한 트릭에 속아넘어가는 걸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세상은 순진한 희생자를 먹이로 삼으며 그렇게 흘러간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삼류 카니발의 단원인 스탠턴 칼라일의 성장기다. 스탠은 카니발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콜드 리딩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베테랑 지나에게서 테크닉을 전수받는다. 독립한 스탠은 졸속으로 목사가 되어 여자친구 몰리와 함께 가짜 영매 사기 행각을 시작한다. 두 번째 파트에서 노련한 사기꾼이 된 스탠은 깎은 것 같은 1940년대 팜므 파탈인 심리학자 릴리스 리터 박사를 만난다. 스탠의 트릭을 꿰뚫어보는 리터 박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부유한 고객의 정보를 이용해 한탕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실용적인 면만 본다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스탠과 같은 사기꾼에게 넘어가고 싶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이런 종류의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쓰는 온갖 트릭들이 꼼꼼하고 정확하게 설명된다. 몇몇 기계적 트릭은 세월과 함께 낡았지만 희생자를 조종하는 사기꾼의 마인드 트릭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나이트메어 앨리>는 경고담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험악하기 짝이 없는 20세기 초중반의 역사를 거친 미국 남자의 악몽과 같은 비전을 반영한 책이라고 보는 게 맞다. 대공황, 전쟁, 기근, 인종문제 그리고 위로 치고 올라가는 무서운 여자들. 그건 1930년대 이후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일드 소설과 필름 누아르의 자양분이기도 하다. 단지 소설은 영매 사기꾼을 동원해 익숙할 수도 있는 터프 가이의 이야기에 고유의 섬뜩한 개성을 부여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소환하는 스탠의 수법은 그냥 사기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귀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두 번째 영화판을 만들고 있다. 첫 번째 영화판은 40년대 필름 누아르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당시 할리우드가 지켜야 했던 자기 검열 기준 때문에 다루지 못하거나 부드럽게 처리한 부분이 있다. 델 토로의 영화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R 등급이 될 것이라 한다. ‘캐롤’의 팬이라면 릴리스 리터 박사 역으로 케이트 블란쳇이, 몰리 역으로 루니 마라가 나온다는 사실에 흥분할 것이다. 하지만 델 토로가 일부러 서비스를 하지 않는 한 이 둘이 만나는 장면이 그렇게 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공포와 고통이 당연시되는 세계...그럼에도 이 소설이 밝고 씩씩한 이유 2021.02.10
완전히 믿을 수 없는 화자…여성 주도 서스펜스물 2021.01.27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