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

등록일 | 2019.02.25 조회수 | 5,783

[작가의 요즘 이 책 ⑥] 박준 "내게 시 쓰기란 울지 않으려 부르는 노래"

최근 몇 년 간, 박준 시인은 독자들에게 꽤 익숙한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출간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박준/ 문학동네/ 2012년)를 시작으로 2017년 출간한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난다/ 2017년)까지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준 시인은 ‘작가의 요즘 이 책’ 시즌2의 여섯 번째 작가로 참여한 인터뷰에서 이런 독자의 반응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했다. 책이라는 ‘상품’에 대한 인기와 그 안에 깃든 문학성을 인정받는 것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때문에 미리 편수를 채워 완성했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 문학과지성사/ 2018년)는 2~3년 미뤄진 지난 연말 출간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박준 시인을 전업 작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시인인 동시에 출판 편집자다. 박준 시인은 이번인터뷰를 통해 출판 편집자로서의 일상과 작가로서의 생활, 등단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일면식도 없던 故 허수경 시인에게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발문을 받기 위해서 출간을 1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Q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각각 10만 부 넘게 판매된 시인이 근래에는 없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요?

“제가 제 입으로 그 이야기를 하면 약간 재수가 없어 보이겠지만 보편에 기대서 ‘나도 이런 적 있어’, ‘나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어’와 같은 요소가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 잘 나가는 건 기쁜 일인데 동시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Q 등단 전에는 신춘문예에 여러 번 도전했다고 들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스물여섯 살 때까지니까 6년 정도… 주로 등기우편으로 원고를 보내잖아요. 그 영수증을 모아놨는데 100장은 넘어요. 우체국에 계신 분이 제가 뭘하러 오는지 알 정도로...”

Q 2012년에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내고 이렇게 인기가 많을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좋아요, 감사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인지도가 사실 조심스러워지는 게 있어요. 어쨌든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면서 (전과는) 달라졌는데, 이전의 저의 삶을 걷어찰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Q 첫 시집 발문을 故 허수경 시인이 하셨잖아요.

“좋은 시인에게 받고 싶었던 욕심이었어요. 당연히 안 써주실 거라고 생각했죠. 한 번도 못 뵀지만 ‘(발문을)쓰겠다’라고 하셨는데 ‘1년을 더 써라’라고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저는 빨리 시집을 내서 뭔가를 한 번 보여줘야 하는데 1년을 더 쓰라니 너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너무 받고 싶으니까 ‘더 쓰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로부터 1년 뒤에 (허수경 시인의 발문이 실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냈어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 문학동네 / 2012년

Q 박준 시인의 시를 읽으면 ‘아버지가 정말 탄광에 가셨나’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개인적 경험처럼 느껴지는 시들이 많아요.

“처음에는 취재를 했어요. ‘고시원에 대해서 쓰자’라고 생각을 하고 한두 달 정도 넘게 멀쩡한 집을 두고 고시원에 간 거죠. 두 달 동안 누워있다가 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모르는 타인의 삶에 대해서 제가 재단해서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요. 어느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 내가 갖고 있는 문학적 진실 내에 있는 것이라면 사실이 아닌 것을 써도 무방하다’. 광부들의 삶을 봤는데 저희 아버지의 삶과 똑같더라고요. 인간이 노동하고 기본적인 욕망들에 휩싸여서 살다가 병을 얻고 죽는 이 큰 틀에서 보면 ‘이게 삶의 진실이구나’하는 생각을 해요. 개별적 사실을 더 캐내어 그것만을 새로움이라고 생각해서 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시에 자주 등장하는 ‘미인’에 대해서 질문 많이 받지 않았어요?

“여성을 두고 미인이라고 썼으면 당연히 안 썼을 거예요. 그냥 ‘아름다운 사람’, ‘존경할 수 있는 삶을 살다 간 아름다웠던 존재들’을 다 미인이라고 했던 거예요.”

Q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마지막 시 ‘세상 끝 등대 2’에 생몰년(生沒年)이 적혀 있는 사진이 있어요. 죽음에 대한 원체험이 담겨 있는 시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있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원체험이라는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전부잖아요? 저는 그 사람이 친누나인데, 제가 시인이 되자마자 세상을 떠났어요. 그동안 너무 추상적이었던 죽음이 절차부터 형식, 모두 너무 강렬했고요. 자식을 잃은 저희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거의 죽은 상태와 크게 다름 없는 것이잖아요. 그 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거니까 그 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고열을 자주 앓는데 이것도 약간 죽음과 비슷해요. ‘이런 게 죽음인가?’ 그럴 때 시를 쓰죠.”

Q 박준에게 ‘시’와 ‘시 쓰기’란 뭔가요?

“시는 울음 같은 것. 일부러 쓴다고 써지지 않는 것처럼 터져 나올 때 참아지지도 않는 것이니까. 그래서 시는 울음 같은 것이다. 시 쓰기는 조금 다른 건데요. 울지 않으려고 부르는 노래 같아요. 밤에 무서울 때 길 걸을 때 괜히 노래를 부르잖아요. ‘울지 않으려고 노래 불러야지’하는 것이 저에게는 시 쓰기인 것 같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 난다 / 2017년

Q 편집자로서의 생활, 시를 쓰는 시인, 산문을 쓰는 사람. 이 세 가지 생활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잖아요.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 하루 중에 23시간 정도는 일상인으로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설렁탕을 먹을 때 시인으로서 설렁탕을 먹는다고 치면 ‘이 소는 언제 죽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될 거잖아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예민한 것이 사실 쉽지가 않으니까. 그래서 주로 새벽이나 한밤 중에 시인의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시인 박준을 위협하 는 것은 화(火)인데요. 성격이 소심해서 남에게 화를 내지는 않거든요. 화가 나도 가슴에 품고 있어요. 일상에서 화가 쌓이면 창작자로 못 넘어가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Q 다양한 세대가 박준 시인의 시를 좋아해요. ‘이 사람은 분명히 내 세대일거야’라고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노래를 정말 못 하는데 가끔 혼자 있을 때 부르는 노래가 ‘찔레꽃’이거든요. 가사가 ‘엄마 일 가는 길에 엄마를 기다리며 찔레꽃잎을 하나씩 따먹는다’는 내용이에요. 이 노래를 좋아해요. 그런데 혼자 술 마시다가 들으면 슬퍼지더라고요. 그 이유가 어린 시절에 엄마를 기다리며 끓여먹던 컵라면이 생각나서 그래요. 100년 전 찔레꽃을 뜯어 먹던 아이와 100년 후 엄마를 기다리며 컵라면 먹던 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시를 쓸 때는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 까치 / 2010년

Q 박준 시인의 요즘 이 책은 뭔가요?

“막스 피카르트라는 작가가 쓴 <침묵의 세계>라는 책인데요. 옮긴이가 최승자 시인이에요. 어떨 때는 ‘책 읽고 싶다’ 이런 생각 들거든요. 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워낙 많으니까 정말 읽고 싶을 때 읽는 독서의 즐거움이 쉽지가 않아요. 위가 아플 때 진경제를 먹는 것처럼 ‘어떤 감정에 놓일 때 이 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있어서 <침묵의 세계>는 마음이 번잡하고 시끄러울 때 읽어요. 이 작가가 침묵이라는 키워드로 한 권을 풀어내고 있거든요. 침묵이 단순히 말이 정지된,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에게 혹은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담은 책이에요. 마음이 시끄러울 때 읽으면 진짜 좋아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Q 새 시집이 나왔죠?

“네. 사실 편수를 채워놓고 완성한 것은 2~3년 전의 일인데 그냥 조심스러움 같은 것이 계속 지연시켰던 것 같아요. 첫 시집이 많이 판매되었는데 상품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책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문학이니까 그 다음 시집이 상품으로서 잘 되는 것도 좋겠지만 문학으로서 잘 돼야 하거든요. 그 부담이 지금까지 끌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Q 새 시집 제목이?

“길어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표제작 ‘장마’는 편지 형식인데 누구한테 쓰는 편지냐 하면 사실 (딱히 수신자는) 없어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말은 저에게 최선의 고백 같은 것이에요. ‘보고싶어’라는 말의 다른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고백이라는 것은 100% 알아듣게 고백하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니까 애매하게 알아듣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날씨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요즘 추워졌지? 내일 모레부터 비온대’ 제 눈에는 날씨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뭔가 다정해보이기 시작했어요. 날씨 이야기라고 할 말 없을 때 툭툭하는 것조차 삶의 가장 중요한 일 아닌가 (싶어요).”

Q 독자가 읽는 작품을 쓰는 작업의 의미는 뭐예요?

“’어느 날 독자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면 그럼 난 시를 안 쓸까?’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시를 진짜 열심히 쓸 것 같아요.(웃음) 시를 쓰는 과정 자체가 어떤 목적을 정확히 두고 있다기보다는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삶이 흐르는 것에 대한 한 태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 중앙일보 [작가의 요즘 이 책] ‘박준 편’ 기사 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345742

▶ 작가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p8hwCeUaW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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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도서 독자가 읽으면 좋은 책을 명사가 직접 추천합니다.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 문학동네

    시는 울음 같은 것. 일부러 쓴다고 써지지 않는 것처럼 터져 나올 때 참아지지도 않는 것이니까. 그래서 시는 울음 같은 것이다. 시 쓰기는 조금 다른 건데요. 울지 않으려고 부르는 노래 같아요. 밤에 무서울 때 길 걸을 때 괜히 노래를 부르잖아요. ‘울지 않으려고 노래 불러야지’하는 것이 저에게는 시 쓰기인 것 같습니다.

  • 침묵의 세계 |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 최승자 | 까치(까치글방)

    <침묵의 세계>는 마음이 번잡하고 시끄러울 때 읽어요. 이 작가가 침묵이라는 키워드로 한 권을 풀어내고 있거든요. 침묵이 단순히 말이 정지된,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에게 혹은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담은 책이에요. 마음이 시끄러울 때 읽으면 진짜 좋아요.

  • [프리미엄북]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스윗에디션 | 박준 | 난다

    보편에 기대서 ‘나도 이런 적 있어’, ‘나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어’와 같은 요소가 많아서 (사랑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 잘 나가는 건 기쁜 일인데 동시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 문학과지성사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말은 저에게 최선의 고백 같은 것이에요. ‘보고싶어’라는 말의 다른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고백이라는 것은 100% 알아듣게 고백하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니까 애매하게 알아듣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날씨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요즘 추워졌지? 내일 모레부터 비온대’ 제 눈에는 날씨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뭔가 다정해보이기 시작했어요.


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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