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

등록일 | 2013.10.02 조회수 | 39,057

PD <이영돈>의 서가

책은 아이디어를 아날로그적으로 발견해 내는 창고이다.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책을 읽어라”, “책 냄새를 맡아라”, “책을 사서 옆에 두라. 비록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옆에 두고 냄새를 맡아라. 책냄새 속에는 스토리가 있다”라고 항상 강조한다.

인생은 스토리이다. 모든 것은 스토리로 표현된다. 스토리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내용이 없는 것이다. 만일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으면 책을 읽어라. 책의 머리말은 프로그램의 시놉시스이다. 책의 목차는 방송 구성안이다. 책 내용은 스토리이다. 수많은 책은 모두가 훌륭한 방송소재가 된다. 만일 방송할 소재가 없다면 큰 서점을 가라. 바로 그곳이 아이디어의 보고이다.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 생긴 현상은 얕은 아이디어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줄로 표현되는 지식, 스토리가 부족한 아이디어, 연결성이 결여된 지식이 판친다. 100개의 아이디어로 100개의 얕은 지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1,000개의 아이디어로 스토리가 있는 100개의 농축된 지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책이다. 책의 여백은 우리에게 지식이 아니라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사회가 삭막해지는 이유는 돈이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해서가 아니라 책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되려면 핸드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책을 들자.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는 선진국의 상징적 지표이다.

 

 

KBS에 입사 후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프로그램을 제작해 한국언론상,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분 작품상, 연예오락부분 작품상, 한국프로듀서상, 한국언론상, 백상대상 등을 수상했다. KBS 시사정보 팀장을 거쳐 기획 제작국장과 교양 제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에서 ‘이영돈PD의 먹거리X파일’과 ‘이영돈PD의 논리로 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제작담당 상무로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 등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명사의 추천도서 독자가 읽으면 좋은 책을 명사가 직접 추천합니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앨봄(Mitch Albom), 모리 슈워츠(Morrie S. Schwarts), 공경희, 양은아 | 살림

    나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스승이 없어졌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스승은 학원 선생님으로 대체됐고 사회의 스승이 없어진 지는 오래됐다. 사회의 스승은 이념으로 퇴색되어 우리의 오랜 기억에서 사라졌다. 누구를 기억하면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그런 스승이 있는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나에게 스승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책이다. 우선 얇아서 부담 없이 읽기가 좋다. 모리 슈워츠 선생님은 루게릭병으로 신경이 녹아내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 결국, 목에 구멍을 뚫고 튜브로 호흡해야 한다. 완벽하게 말짱한 정신이 무기력한 몸속에 갇혀 버렸다. 모리 선생은 죽음과 싸우면서 메모해 둔 자신의 삶에 대한 단상이 알려지면서 ABC TV의 테드 코펠이 진행하는 '나이트라인'에 출연하게 돼 유명해졌다. 이 프로그램을 본 제자 미치가 은사를 찾아오면서 매주 화요일 아침 식사 후 '인생의 의미'에 대해 저자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미치는 건강하고 젊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모리 선생님에게 우월감을 느끼지 못한다. 미치가 묻는다. "젊음에 대해 질투가 나지 않으세요?" 모리가 답한다.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세 살이기도 하고, 다섯 살 이기도 하고, 서른일곱 살 이기도 하고, 쉰 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 왔으니까 말이야. 나는 그때가 어떤지를 알지. 내가 다 거쳐 온 시절인데 자네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떻게 부러울 수 있겠나?" 세월이 흘러서 나이가 먹는다고 다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듯 보인다. 테드 코펠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겸한 인터뷰까지 세 번에 걸쳐서 모리 선생님을 만났다. 모리 선생님은 최근에 생각해 낸 아포리즘을 말했다. "너무 빨리 떠나지 마라. 하지만 너무 늦게까지 매달려 있지 마라." 모리 선생님은 작은 파도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작은 파도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모두 부서져서 다 없어져 버린다고, 정말 끔찍하지 않니?' 그러자 다른 파도가 말하지. '아냐, 넌 잘 모르는구나.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냐. 우리는 바다의 일부라고.' 모리 선생님은 가족들이 임종을 위해 다 모였는데도 커피를 마시러 다들 부엌으로 간 사이 조용히 숨을 멈추었다. 난 책을 덮으면서 찾아가서 내 맘속에 있는 나만의 슬픈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모리 같은 스승을 다시 한번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찾지 못해 울었다.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조증열,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 | 에코의서재

    현대 사회에서 심리학은 필수인 것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처럼 어떤 분야든지 심리학은 해당 분야를 풍성하게 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데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난 유난히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관심이 많다. 다큐멘터리 6부작 '마음'을 제작하면서 얻은 뇌에 대한 지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뇌란 것이 정신을 만들어내는 물질이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는 데 그 매력이 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인간 심리와 행동에 대한 나의 탐구력에 불을 지핀 책이다.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인간 본성을 밝히는 대담한 실험들이 탄생한 배경과 실험 그 자체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이 특정행동을 하는 심리적 이유를 실험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보상과 처벌',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 이유', '스킨십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 '가짜 기억을 이식하면 어떻게 될까?' 등 바로 우리의 행동 이유를 적나라하게 적시하고 있다. 존 달리와 빕 라타네 두 심리학자는 어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며 소리를 지를 때,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그 요청을 무시하고, 혹은 동정을 베푸는지 테스트했다. 1964년 미 뉴욕주 퀸즈에서 있었던 제노비스라는 젊은 여성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강간 후 살해당할 때 38명이 도움을 줄 수 있었는데도 무시해 버린 희대의 사건의 심리적 원인을 밝히려는 실험이었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왜'라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한 인간탐사를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러나 쉽게 하나하나 진행하게 한다.

  • 피로사회 | 한병철(Han Byung-Chul), 김태환 | 문학과지성사

    <피로사회>는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가 독일어로 쓴 현대사회 성과주의에 대한 비판서이다. 2011년 독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철학책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고려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후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94년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피로사회>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 책이 소진 증후군,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과 같은 정신질환의 역사적 위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한 교수의 의학과 생물학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표현들이다. "지난 세기는 면역학적 시대였다.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이다. 이러한 면역학적 장치의 본질 속에는 어떤 맹목성이 있다.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면역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한 교수에게 관광객 또는 소비자들은 더는 면역학적 주체가 아니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한 교수의 성과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내가 나를 착취해가며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해 회의가 드는 순간이다. 한명철 교수의 냉철한 표현력은 우리의 심장을 파고든다.

  • 인간 본성에 대하여 |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이한음 | 사이언스북스

    인간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일까? '나의 행동은 왜 특정방향으로 향하는가'는 항상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이다. 나는 인종과 나이를 관통해서 흐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들을 방송프로그램으로 풀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윌슨 교수는 인간 본성에 대해 '공격성' '성(性), '이타주의' '종교' 등 여러 논점을 던지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였고 '생물 다양성'과 '사회생물학'의 아버지인 윌슨은 '종(種)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본성 외에는 그 어떠한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단호히 말한다. 논의의 핵심은 뇌가 자신의 통합을 지시하는 유전자의 생존과 증식을 촉진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정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이며 이성은 그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생물학의 용어와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표현이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놓은 매개체에 불과하다'란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없어지지만, DNA는 세대를 넘어 흔적을 남김으로써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 본성이란 그렇게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고 유전자 복제의 과정에서 이어진 것이다.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는데 <인간본성에 대하여>가 중요한 팁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윌슨 교수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 만약에 1 - 군사 역사편 | 스티븐앰브로스, 이종인 | 세종연구원

    창의성은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요소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창의성에 날개를 달면 상상력이 된다. 그러나 상상력은 현실성이 없을 수가 있다. 만일에 이미 벌어져서 역사가 된 사건의 결과를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면 짜릿하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만약에>는 1편과 2편에 걸쳐 군사와 일반역사로 나눠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체역사(Counterfactual history)를 쓴 것이다. 나에게 책은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소재이다. <만약에>를 봤을 때 떠오른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만약에'이다. 나의 프로그램 소재 책에 단단히 적어놓았다. '세계의 군사 역사가들이 대체역사를 상상하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만약에>는 '역사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정한다.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군 진영에 전염병이 돌지 않아서 철수하지 않고 유대인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이겼다면 유다왕국이 사라져 '크리스천이 없는 세상'이 되었을까? 1242년 몽골 정복자들은 몽골정복자들은 동유럽에 도착했다. 그들은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땅에 제국을 건설 중이었다. 몽골의 서양 정복 시도만큼 서양사에서 큰 위협은 없었다. 칭기스칸의 전략 중 하나는 '대학살을 자행하는 것'이었다. 어떤 도시가 저항했다가 함락되면 모든 주민을 살해했다. 1220년 하라트에서는 160만 명이 죽었다. 혹시 살아남았을까 봐 모든 시체의 목을 잘랐다. 나샤푸르에서는 174만 명이 죽었다. 몽골군은 타민족의 사회를 완전히 파괴했다. 그런데 유럽 전체를 점령하기 전 이들은 갑자기 철군해버렸다. 몽골의 지도자인 오고타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관습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몽골로 돌아간 것이다. 만약 몽골군이 철수하지 않고 로마를 점령해 파괴했다면 유럽사회의 전통 계승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단테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가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한 개인의 죽음이 세계를 움직일 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는 '종교개혁' '미국독립전쟁' '나폴레옹' '히틀러'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결과가 바뀌었다면 어떤 새로운 역사가 쓰였을지 흥미진진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창의력의 계발을 위한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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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장석주>의 서가 2013.10.14
기업인 <이돈태>의 서가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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