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사이드

등록일 | 2016.10.07 조회수 | 14,360

[베스트셀러 돋보기] 러브스토리에 대한 '일상'의 반격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역시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저력은 ‘보통’이 아니다. 8월 24일 출간된 알랭 드 보통의 신간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이 인터파크도서 9월 베스트셀러 랭킹에서 2위를 차지했다. 소설 분야 랭킹은 1위. ‘거장’ 조정래 작가의 신작 <풀꽃도 꽃이다>,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은 <구르미 그린 달빛> 등에도 앞섰다.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해외 작가’ 설문조사에서 빠지지 않는 작가다. ‘사랑 3부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이 세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덕에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에세이 <불안> <여행의 기술> <영혼의 미술관> 등을 통해 ‘일상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추가한 전방위적 작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그가 <키스 앤 텔> 이후 21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사람들이 "소설 언제 다시 쓰실 겁니까?"라고 물으면 전 항상 "사랑에 대해 쓸 것이 충분히 생기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저에게 사랑의 감정을 탐구하는 매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2016. 4. 8. 북DB 인터뷰 <알랭 드 보통 "결혼은 감정 아닌 기술">

21년 동안 충분히 사랑의 감정을 탐구해온 결과물.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러브스토리에 대한 반격이다. 제목처럼, 낭만적인 연애가 끝난 후 결혼이라는 일상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진짜’ 사랑 이야기.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세밀한 묘사 위에, 오랜 관찰과 깊은 탐구의 결과로 도출된 사랑에 대한 정의와 조언이 더해진다.

결혼과 사랑의 현실에 대한 조언이라고는 했지만, 텔레비전 ‘아침마당’ 부부상담 코너나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하는 식의 주례사를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작가가 누구인가.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 아닌가. 이 책은 인간의 감정과 사랑의 기술에 대한 한 편의 강 의에 가깝다. 낭만만으로 포장되거나 극복될 수 없는 진짜 사랑의 현실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집약돼 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단련해야 할 ‘기술’이 있다

분명히 ‘소설’이라고 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형식이 좀 독특하다. 소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 에세이(?)가 사이사이 혼합돼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한 쌍의 남녀 라비와 커스틴. 두 사람은 서로 만나고,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별것 아닌 일로 싸우고, 한눈을 팔기도 하다가, 전문가의 도움에 기대기도 하면서 사랑의 기술을 차근차근 깨달아간다.

소설에는 중심이 되는 큰 갈등구조가 없다. 이야기는 장면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그 장면이 멈추는 사이 다른 화자(아마도 작가 자신)가 등장해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소설과 에세이가 교차하는 이 같은 형식은 작가가 소설 사이에 ‘주석’을 단 것과 비슷하다. 한 독자는 이런 형식과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의 특징을 연결시켜 아래와 같이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들에 주석을 붙여주는 기분이 들어요. 그를 통해서 순간적인 감정으로 사그라드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죠. – 인터파크도서 독자 '하나루이'

 
소설과 에세이가 교차하는 독특한 형식. 소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작가의 ‘주석’과 같은 에세이가 글꼴을 바꾸어 등장한다.

에세이 가운데에는 저절로 밑줄을 긋게 만드는 글귀들이 많다. 사랑에 대한 기발한 정의와, 본질을 때리는 묵직한 조언. 책을 읽으며 가슴을 때리는 글귀가 나올 때마다 책장 귀퉁이를 접어 놓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한쪽이 불룩 일어날 정도로 접은 곳이 많았다. 직접 이 글에 옮겨서 보여주고 싶은 글귀들이 너무 많지만, 지면의 한계로 아주 일부만 옮긴다. 굉장히 힘들게 고심하며 고른 것들임을 먼저 밝힌다.

성욕은 처음에는 단지 생리적 현상, 호르몬을 깨우고 신경 말단을 자극한 결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감각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생각,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끝날 거라는 전망과 관련이 있다.(40쪽)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116쪽)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278쪽)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하는 게 바람직하다.(281쪽)

이 책을 읽을 때, 주인공 라비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커스틴은 직업이 무엇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나 자신, 또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읽어나가면 된다. 사랑과 연애, 결혼을 경험한 이들의 심리를 직격하는 작가의 서술. 사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아마 자연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가며 읽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술술 읽어나갈 수가 없다. 때때로 책에서 눈을 떼고 ‘나는 어떤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며칠간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읽었다. 한 시간쯤의 출퇴근 시간 동안 대개 100쪽 정도는 읽어낸다. 게다가 작은 판형의 소설이라면 더 빨리 읽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진도(?)가 나가는 속도는 그 절반 수준이었다. 그만큼 몰입하게 하고, 자신의 문제를 떠올려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기사에 옮기고 싶은 글귀가 나올 때마다 책장 귀퉁이를 접었더니, 나중에는 이렇게 책 한 쪽이 불룩하게 올라올 정도가 됐다.

사랑이 조금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 처방전’

굉장히 바쁜 사람이라면 소설 부분을 적당히 건너뛰고 에세이 부분만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다. 그것만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사람들은 마지막 챕터인 5부의 에세이만 읽어라.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 부분은 알랭 드 보통이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결론적으로’ 압축해둔 부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소설 부분이 재미없거나 불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에세이 부분의 메시지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알랭 드 보통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랑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기술이라는 것”(262쪽)이다. 작가는 이 한 문장에 대한 독자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300쪽에 가까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라비와 커스틴을 앞세워 그들의 낭만적이고도 구질구질하며, 숭고하고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현실을 보여준 것은 오직 그 하나를 위해서다. ‘사랑은 기술’이라는 이 짧은 진실을 알기 위해 주인공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부디 독자들은 그런 과정을 겪지 말라는 뜻 아니겠나.

연인으로서, 남편 또는 아내로서, 또 부모로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단련해야 할 기술들이 있다. 기술이라는 단어 자체는 너무 실용적인 느낌이 들지만, 앞서 인용한 몇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 기술을 발견하기까지 작가가 보낸 고민과 모색의 시간들은 지극히 철학적이다.

하지만 이 책에도 분명히 아쉬운 점은 있다. 가장 거슬린 것은 ‘넘치는’ 관념어들. 인간의 감정과 정신,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서술이라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문장 가득 등장하는 관념어들과 번역문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낯섦이 더해질 때, 나는 낱말들 사이에서 잠시 어색하게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가지는 책을 읽기 전에 느낀 아쉬움. 아무래도 헷갈리고 입에 잘 붙지도 않는 책의 제목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대비시키는 것으로 소설의 주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이다. 그렇더라도 독자들에게 한 번에 기억이 안 된다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단점 아닌가?(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나 책 제목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좀 심심하긴 하지만 원제 “The Course of Love”(‘‘사랑의 행로’쯤 되려나)를 직역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녀는 평소처럼 금욕적인 소견으로 그의 말에 퇴짜를 놓는 대신에, 따뜻하고 조용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 말하고 그의 손을 꼭 잡는다.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핑 돌려는 찰나에 웨이터가 다가와 부인께서 더 필요하신 게 없느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살짝 흐려진 발음으로 “사랑이 조금 더 필요해요”라고 대답한 후 더는 말이 없다.(289쪽)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알랭 드 보통이 전 세계인에게 전하는 사랑 처방전이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또는 앞으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만한 교과서가 또 있을까. 커스틴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에겐 아직 “사랑이 조금 더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도 결국 그것이다.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파크도서 북& 최규화(북DB 기자)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입니다.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대통령보다 높은 사람, 당신보다 낮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somecrud@interpark.com

[10월 1주 베스트셀러 리포트] 설민석의 독주를 막아선 주인공은? 2016.10.12
[9월 4주 베스트셀러 리포트] 사랑도 위로도 아니다… 대세는 ‘자존감’ 2016.10.07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